1927년 4월 22일 공업·잠업·임업·축산·수산 종사자 미미해교육, 보통학교 5·강습소 3·서당 80여 개 “工業은 小規模 製品 外에 別로히 産額이 無한데 工場數 總計 六開所에 朝鮮人 從業者가 四十餘人에 不過하다 한다. 蠶業 現狀을 보건데 昨年度 養蠶戶數가 八百六十餘戶인데, 掃立枚數가 千餘枚에 達하여 그 繭産額이 三百四十餘石인 바, 當郡에 養蠶家는 大槪가
1927년 4월 21일 곡물 생산 전국 굴지, 교통 편리경부선 개통으로 평택시장 개설 “우리 진위는 경기도 남부에 위치하여 동은 안성군과 접하고 서북은 수원군과 린하고 남은 충남 아산, 천안 양군을 임하였는데, 지광은 동서가 칠십리, 남북이 60리에 총면적이 이십육만리강인 바, 동북일대에는 산릉이 이 기복하였고 서부에는 진위천 급 안성천이 장류하여 아산만에
1921년 4월 8일 1914년 평택리 설립, 조합원 888명1921년 8월 예금 5만 5861원 45전 “振威郡 丙南面 平澤里 金融組合은 大正 三年에 設立한 以後 今年度까지 第七回 決算期를 當하였는데, 同 組合 理事 上野進一郞氏는 就職한 以後로 十年을 一日과 如히 執務하고 且 組合員에 對하여 親切을 盡하였으며, 現在 組合員 數는 八百八十八人인데 自今以後로
1931년 6월 11일 일본인 검사원의 무성의한 ‘갑질’ 검사뿔난 농민, 거칠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어 “경기도 곡물검사 평택지소(京畿道 穀物檢査 平澤支所)에서는 지난 十一일 평택 장날에 ‘가마니’를 가지고 검사를 맡으러 몇 十리 밖에서부터 모여온 바, 검사원 재등(齋藤)의 검사가 도무지 고르지 못함으로 동군 서면 송화리(西面 松花里) 장정득(張丁得) 외 몇
1925년 2월 7일 북면 갈곶리 한필호 독지가 농사조합 조직추수 후 벼이삭과 콩 줍기·가마니 짜기 등 “京畿道 振威郡 北面 葛串里에서는 大正 八年부터 該里 篤志家 韓弼鎬氏를 中心으로 農事改良風紀改善 並 勤儉貯蓄을 目的으로 하는 農事組合을 組織하고 邇來 此 目的을 達成코자 組合員 一同은 成績擧場에 努力하던 中 年年 二月 七八日間 該里에서 組合
1924년 4월 16일 안중금융조합, 대부금 이자 연체에 만행조합원 칼로 위협하는 그림 사무실 붙여 “경기도 진위군 오성면 안중(京畿道 振威郡 梧城面 安仲) 금융조합 이사 류준희(柳準熙)는 대부금 체납자 백여 명에게 연체이식(延滯利息)을 내이도록 하는 자는 적(敵)이니 발검정벌(拔劍征伐)을 막부득(莫不得)이란 선언서를 배부하였고, 그 조합 사무실 벽에다가
1930년 4월 13일 평택공립보통학교장 퇴임 맞아 기부보통학교 학부형회·야학부 등 5곳 “평택공립보통학교장 임신병위(平澤公立普通學校長 林新兵衛) 씨는 금회 퇴관의제에 평택재근을 기념하기 위하여 각종 공공단체에 좌기와 같이 금품을 기부하였다더라. 군교육회 5원, 보통학교 학부형회 10원, 청년회 야학부 5원, 학교조합 10원, 재향군인분회 10원, 소방조
1934년 5월 29일 사금 판 거액을 죽마고우에게 맡겨친구는 이 돈을 갖고 도망가 버려 “평택(平澤) 사는 금광업하는 조윤식(趙允植, 三八)이라는 사람은 사금을 가지고 서울 와서 유장상회에 팔아가지고 돈을 천원과 합해서 三천백 十六원 三十四전을 자기의 고향 친구인 안순만(安順萬, 三七)에게 맡기고 토지를 물색하던 중 나갔다가 돌아와 본즉 달아나고 말았다는
1934년 3월 23일 돈 없으면 죽는 세상에 동생은 고물상 운영형은 기생집에서 재산 탕진, 동생 자살기도“돈 없으면 죽는 세상에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청루에 방황하는 형과 이루 싸워가며 살기가 싫어서 다량의 쥐약을 먹고 죽으려는 아우가 있다. 경부선 평택역 평택리(平澤里) 고물상 박선익(朴善益, 29)의 형 되는 순기순=모다 假名=이가 일상 주색에 침범하
1930년 12월 8일 장호원주재소서 무기류 탈취한 독립운동가서탄면과 오성면에서 은신하면서 지내기도“(전략) 八일에는 평택(平澤)에 나타나 중국말만 써가며 중국인으로 행세하다가 천안(天安) 산중에서 이틀 밤을 노수하고 (중략) 오산역에서 남북행이 갈리는 터이므로 다소 혼잡할 차 시간을 이용하여 동일(十일) 오후 六시경에 정거장에 나타났으나 누보한 바와 같이
1936년 3월 26일기산리 마을 주민 수백 명 기아로 허덕여이강헌·이민호 두 사람 쌀 30가마니 제공“중부 조선의 유일한 미곡간지인 평택역(平澤驛)에는 수출되는 쌀이 산과 같이 쌓였건만 먹을 양식을 얻지 못하여 기아선상에서 울고 있는 궁민의 수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여 一대 참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처참한 정상을 동정하여 유지로부터 보내는 ‘눈물의 선물’
1934년 7월 6일순사가 허락 없이 남의 술안주 먹어주재소 차원에서 사건 축소하고 왜곡 “지난 六일 평택역(平澤驛) 전 음봉양조장(蔭鳳釀造場)에서는 노동자가 사서 먹은 술안주를 순사가 무례하게 집어 먹은 것이 발단되어 순사가 노동자를 기잡도록 구타한 후 무조건으로 묶어가지고 간 사건이 있었다. (중략) 이에 대하여 문제의 가해 순사 조씨는 말하되, 세상에
1931년 7월 6일청북 지주·마름, 서울지법에 보증인 3명 소송 보증인 평택署 맞고소, 지주는 사기죄로 검거 “진위군 청북면 덕우리(振威郡 靑北面 德佑里)에 본적을 두고 현재 경성부 사직동(社稷洞) 四十九번지에 거주하는 부호 이강세(李康世)는 자기 토지의 사음인 진위군 오성면 학현리(振威郡 梧城面 鶴峴里)에 사는 박진원(朴鎭遠)과 공모하고 전기 박모의 보
1930년 12월 20일손님과 다른 음식점 나오다 주인에 들켜170원 팔려온 작부, 세상 비관 우물 투신 “본적을 경성에 두고 목하 경부선 평택역전 이경화(李京化)음식점에서 채금 一백七十원에 고입되어 작부 노릇하는 권농월(權弄月)은 금월 十八일 밤에 마침 전일에 친분이 있는 성환 방면의 손님이 내방하였음으로 十二시까지 지내도록 술을 팔고, 오전 一시경에 그
1923년 6월 19일진위군 평택리 장로교회당에서강사 이진해, 열변 토하며 강연 “京城피어선聖經學院學友會 巡廻講演團 一行은 去十九日夜 振威郡 平澤里 長老敎會堂에서 金春培君의 司會로 講演會를 開催한 바, 主日學校 金仁愛 朴尙令 兩學生의 合唱이 있은 후, 講士 李震海君이 『生을 何處求』라는 題로 熱辯을 吐하고 同十時에 散會하였더라”(동아일보, 1923년 6월
1927년 4월 23일인천·서울지역 근대문명 시설 관람 견학단, 일제 식민통치 미화 목적“◇ 日時 : 四月二十三,四日 兩日間” ◇ 見學場所 : 仁川=仁川市內, 各公園, 仁川閘門, 月尾島, 潮湯 等 京城=總督府 新廳舍, 昌慶苑, 各,公園, 各 新聞社 等◇ 申請場所 : 東亞日報 平澤支局◇ 申請期限 : 4四月 二十二日까지◇ 會費 : 一人前四圓(汽車賃 食費 等)◇
1930년 10월 16일 10월 16일 창립대회, 3~400명 출석진위·안성 무산대중 중심으로 결성 “진위 안성(振威 安城) 양군에 무산대중을 중심으로 하고 일구(一口) 오십 전으로 최고 십구 전까지 하여 오래전부터 발기하여 오던 진안협동조합은 예정과 같이 지난 16일 오후 두시에 본 조합 임시사무소에서 농번기임에도 불구하고 출석한 회원 삼사백 명으로 창립
1928년 8월 30일 나무하러 갔던 아이가 발견해 잡아평택 읍내서 공개, 구경꾼 대 혼잡 “진위군 부용면 객사리(振威郡 芙蓉面 客舍里) 망한사(望漢寺) 부근에 머리가 두 개인 배암을 나무하던 아이가 잡았는데, 동면 추팔리(秋八里) 박병구 군이 일반에게 관람시키기 위하여 일전에 그것을 가지고 평택에 온 바, 잠시 동안은 관람자로 인하여 대혼잡을 이루었으며
1928년 8월 17일 장사를 하다가 250여 원 손해 본 형친동생과 서로 짜고 강도당했다 신고 “진위군 오성면 양교리(振威郡 梧城面 梁橋里) 정봉화(鄭琫和, 二六)의 집에 십육일 오전 네 시경에 삼명의 강도가 침입하여 정봉화가 사랑에서 자고 있는 것을 끌어내 가지고 팔과 다리를 묶어 놓고 현금 백육십원을 강탈 도주하였다는 급보가 평택경찰서(平澤警察署)에
1933년 9월 26일 3시간 반 불타, 1만 5000원 손해일본인 여관 등 8호 전소, 실화 추정 “지난 二十六일 오전 一시 二十五분경 경기도 진위군 평택면 평택리(振威郡 平澤面 平澤里) 가납여관(加納旅館) 뒤에서 발화하여 부근 인가 八호를 전소시켰다. 이번 화재는 평택에서 처음 보는 큰 화재로 소방조와 야구서장(野口署長) 이하 경찰서원이 총출동하여 진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