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 많이 사라진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고유의 전통은 몇몇 뜻있는 이들을 통해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화된 세상 속에서 기계도 아닌 수공으로 전통을 잇는 사람, 바로 평택시 서탄면에서 국악기를 제작하고 있는 김진곤(40) 씨다. 아무리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이지만 수공이 아니면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세상의 어떤 부모라도 힘든 순간에는 자식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 평택시 합정동 비전초등학교 앞에서 ‘평택김밥’과 ‘맛찬’이라는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이현정(45) 씨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정 씨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렇게 힘을 얻을 수 있는 아이들이 자그마치 5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그녀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다닌다 한
직업에 귀천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꺼리는 직업이 있게 마련이다. 종일 생선 비린내와 함께 해야 하는 직업이라면 그 부류에 들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넓은 마트 한편에서 종일 웃음 띤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마이크에 대고 싱싱한 생선을 홍보하는 이가 있다. 바로 비전동 한국마트에 입점해 있는 으뜸수산 문승호
평택 명동거리에 베트남음식점 개업, 생활력 강한 20대 미시 앙턱벳(AM THUC VIET), 베트남 출신 여성 보배퉁(27) 씨가 최근 평택시내에 개업한 식당이름이다. 2005년 결혼해서 한국으로 시집온 그녀는 그 동안 부지런히 직장생활을 하며 번 돈을 투자해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으로 변신했다.친구와 동업하며 절반씩 투자지난 2일 보배퉁 씨가
누구에게나 주어진 일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이 천직이겠거니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 일이 천직이라 믿는 사람이 있을까. 어쩔 수 없어서, 오래 하다 보니, 다른 업종으로의 전환이 힘들어서 하다 보니 어느새 그 방면에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되고 어느새 천직이 돼는것 아닐까.7년째 함께 일하는 부부“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오래 했어요. 정
마음이 지쳐있다면 이곳엘 가자. 하루 종일 귀를 파고드는 소음들과 정신없이 돌아가는 빠른 속도 속에서 문득 나 혼자만 뒤처지는 것 같아 마음이 허허로울 때면 이곳엘 가자. 오래 전 뜨거웠던 청춘과 함께 했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금껏 앞만 보며 달려온 시간들에 작은 쉼표 하나 찍을 수 있는 곳, 바로 서정동에 있는 LP음악 전문 카페 ‘블루노트’다.끊임
꿈을 꾼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꿈을 위해 노력하고 하나씩 이뤄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도전과 인내, 그것이 있는 사람에게만 꿈은 빗장을 풀고 그 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사십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새로운 꿈을 꾸고 그에 도전하며 더욱 단단해져가는 한 여성이 있다. 바로 평택에서 18년째
세상엔 기다려주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때문에 지난 수세기 동안 많은 현자들이 ‘지금’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을 살고 있기에 ‘지금’의 중요성을 자주 잊고 살아간다. 평택시 세교동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서순옥(50)씨는 얼마 전 친정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야 ‘지금’의 소중함을 실감하고 있다.돌아가
“아이들이 셋이에요. 이제 10살, 6살, 2살 딸 둘에 아들 하난데 요즘은 이 녀석들과 놀아준 시간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요. 6살 난 아들 녀석은 축구를 좋아하는데 같이 축구 한번도 못해줬어요. 직장이 있다면 퇴근한 뒤에 아이들이랑 놀이터도 가고, 가끔씩 아이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에버랜드도 가고, 눈썰매장도 갈 수 있을 텐데 말예요”서맹섭 씨
하루에도 몇 번씩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를 외치는 사람이 있다. 특별한 종교인이 아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일 뿐이다. 그러나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감사, 사랑, 축복을 외치며 환하게 웃는 그에게서 많은 사람들이 작은 행복을 전달 받는다.주민들에게 친절한 웃음 전하는 젊은 경비원평택 롯데인벤스 주차장에서 만날 수 있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의 마음도 점점 여유가 없어진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내 가족과 내 집안만 생각하는 풍토가 만연하다는 게 대부분의 시각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 해도 주변 어딘가에는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꺼이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풍족해서 나누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도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던 지난날이 있었기에 작은 마
“하모니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외삼촌의 유품이었습니다. 외삼촌이 그리울 때마다 불곤 했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전달하는 하모니카 전도사가 되어버렸네요.”전직 경찰관이었던 장만수(62)씨는 자신을 하모니카 전도사라고 표현한다. 서울 달동네에서 경찰관 생활을 하던 그는 당시에도 하모니카 하나로 달동네 이웃들의 애환을 달래고 그곳
“세 아이들 데리고 월세 방부터 죽을 힘을 다해 살았어요. 몇 번의 시련으로 죽음까지 생각하기도 했지만 초롱초롱한 아이들 눈을 보면 차마 그럴 수가 없었지요. 지갑에 천 원 짜리 한 장이 없을 때가 많았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젊은 시절 반도패션과 삼성물산 등에 다니며 배워둔 옷 만드는 기술이 있어 현재의
“아줌마 오뎅 국물 좀 먹고 갈게요.”유난히 추위가 심했던 지난 목요일 오후, 삼삼오오 떼를 지어 귀가하던 초등학생들이 스스럼없이 호떡과 어묵을 파는 아주머니네 포장마차 안에 들어와 어묵 국물을 떠먹는다. 어묵 하나 사먹지 않고 국물만 떠먹겠다는 아이들에게 아주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빈 종이컵을 나눠주며 뜨거우니까 조심히 먹으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다
우리 고유의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재래시장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옛 정(情)이 남아있는 유일한 공간. 기자는 예전만큼 활기를 띠지 못하는 평택 통복시장에서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소문난 ‘풍년떡집’(대표 이혜영)을 찾아 2대에 걸쳐 떡의 명맥을 잇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떡을 어르신들만 찾을거라고 생각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