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1월 18일서울 민대식에게 보내는 백미 팔아짐마차까지 팔아 기생에게 써버려 ““경기도 진위군 병남면 합정리 삼백십팔번지 최래하 방에 있는 짐마차 끄는 송태순(振威郡 丙南面 蛤井里 宋泰淳, 二十)은 음력 팔월경에 경성부 경운동 민대식의 집에 보내 일 백미 한 섬을 운반하던 길에 비를 만났으므로 그 중 네 가마를 광주군 김모에게 맡기고 나머지를 운
1917년 2월 6일다년간 면장을 하며 세금 횡령거금 1천 5백여 원 갖고 도망 “경기도 진위군 북면장 이유곤(京畿道 振威郡 北面長 李裕昆, 57)된 자는 동 면장으로 다년 근부하던 바, 지난 륙일에 우연이 악의를 먹고 세금 받은 현금 일천 사백 육십 원을 휴대하고 부지 거처로 도주하였는데, 급보를 받은 동군 경찰서에서는 대활동을 개시하여 엄중히 수색 중이
1936년 7월 17일결혼한 여자를 속여 팔아넘겨행방불명 10여 일 후 경찰 신고 “남의 아내를 삭월 셋방 얻어둔다고 꾀여서 팔아먹었다는 혐의로 잡힌 국수집 중머리가 있다. 원적은 경기도 진위군 오성면 양교리(振威郡 梧城面 梁橋里)에 원적을 두고 현주소 시내 도렴정(都染町) 六五 번지 부벽루 중머리 김성재(金成載, 三三)는 十七일 서린정(瑞麟町) 六二 번지
1914년 12월 11일가천리 사람, 도일리 17세 소년 끌고가찾으러 간 도일리 마을 사람과 패싸움 “본월 십륙일 오전 십일시경에 경기도 진위군 인탄면 도일리(京畿道 振威郡 仁炭面 道日里) 농민 약 삼십 명과 안성군 원곡면 상하가천리(安城郡 元谷面 上下佳川里) 농민 약 육십 명 간에 한 시간이나 서로 큰 싸움이 일어났었는데, 처음 가천리의 사람이 도일리의
1914년 12월 11일남편과 이혼토록 시어머니가 구박배부도주죄 적용, 불기소처분 내려 “경기도 진위군 서남면 유천리 일통 육호에 사는 김성녀(京畿道 振威郡 西南面 柳川里 一統六戶 金姓女, 29)는 남편 김재룡(金在龍)을 버리고 작년 음력 오월쯤에 그 오라비 되는 경성부 증림동 사는 김건섭(金建燮)과 공모한 후 도망을 하여 중림동 사는 최성관(中林洞 崔聖寬
1914년 12월 11일돈 빌려줬다가 대신 사람 맡아매독 걸린 여자라고 산중 버려 “경기도 진위군 포승면 용소리(京畿道 振威郡 浦升面 龍沼里)로부터 홍봉리(紅峯里)로 통하는 길가 산중에 괴이하게 멍석으로 싼 것이 있음을 그곳 농부가 발견하고 해쳐본즉 그 속에는 몸을 운동치 못하고 말도 이루지 못하는 이십 삼사 세 가량 된 부녀가 거의 죽게 되어 있음을 보고
1927년 6월 24일폐병 비관, 치료하러 서울로 가칼로 찔러 자살하려다 구사일생 “경기도 진위군 북면 계곡리(京畿道 振威郡 北面 桂谷里) 삼백팔 번지에 본적을 두고 그의 신병을 고치려 경성부 내에 와있던 양주익(梁柱益, 四三)은 이십사일 오전 세 시에 시내 남미창정(南米倉町) 팔십사 번지 이윤해(李允海)의 집에서 조그마한 양도(洋刀)로 하복부(下腹部)를
1935년 4월 10일돈 10원 혼자 갖는다고 시비형이 동생 두 살 조카딸 밟아 “지난 十일 오후 十시경에 四촌 형제끼리 싸우다 종형 오촌 조카딸을 밟아 죽인 일이 있다. 그 내용을 들으면 진위군 부용면 다락말(振威郡 芙蓉面 頭里) 정용진(鄭龍鎭, 二七)이는 자기 사촌 누이 되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高城郡 峴內面 明波里) 안종수(安鍾洙)의 처 정유
1935년 4월 26일농사철에 순사가 저수보 물 빼버려유천리 道에 진정, 안성군은 무심 “기보-순사가 저수보(貯水洑)를 절단하여 농시에 물을 빼어 버려서 농민들은 크게 낭패하였다 거니와 이에 대하여 안성군 당국(安城郡當局)에서는 방관적 태도를 취하므로 이에 분개한 동민(洞民)들은 군 당국의 처리를 기다릴 수 없다고 중보리 유천리(中洑里 柳川里) 양 동리에서
1938년 7월 3일부도덕한 전쟁, 기억 새롭게 해강연회 개최, 음주·가무 등 금지 “振威郡 平澤에서는 支那事變 一週年인 七月 七日을 當하여 一般의 記憶을 새롭게 하여 時局認識을 徹底 涵養코자 지난 三日 振威郡廳 會議室에서 各官公署長, 各小學校長 及 一般有志, 各 團體長을 召集하고 森山 郡守 司會 下에 左記 實行方法을 協議하였다 한다. 一分間 默念, 祈願
1937년 7월 28일찬밥과 냉수만 준다고 부부싸움휘두른 몽둥이에 아들 맞아 숨져 “고래 싸움에 새우(鰕) 등 터진다는 격으로 부부 싸움에 어린 애가 얻어맞아서 마침내 죽게 되었다는 딱한 이야기가 있다. 진위군 포승면 석정리(振威郡 浦升面 石井里) 목수 박시양(朴時陽, 32)은 지난 二十八일 오후 세 시경 장보러 갔다가 돌아와 점심밥을 그의 처 최씨(崔氏,
1927년 6월 29일장물 시계 판 범인 여죄 추궁추팔리 소장사 돈 강탈한 범인 “주소 부정 모르핀 중독, 전과 삼범(前科 三犯)의 이경선(李敬善, 32)이는 형사 시찰인(刑事視察人)으로 그림자와 같이 형사대가 뒤를 따르는 자인데, (중략) 경기도 진위군 부용면 추팔리(京畿道 振威郡 芙蓉面 秋八里) 뒤 성환(成歡)으로 통하는 길 위에서 동군 동면 두리(頭里
1935년 4월 18일결혼식장에 신부가 둘 등장모산골 가다 길 잘못 들어 “신랑 한 사람에 신부가 둘이나 나타나 일대 넌센스 극을 일으켰다. 이제 그 내용을 들어보면, 진위군 평택면 평택리(振威郡 平澤面 平澤里)에 거주하는 조순호(趙淳鎬, 假名, 二一)는 지난 十八일 신랑집에서 혼례를 거행하려고 만단 준비를 하고 신부 오기만 기다리던 중 신부를 맞으러 나간
1935년 3월 27일밥그릇 깨뜨린 것이 발단양잿물로 손녀 살해 시도 “미신이 낳은 계모(繼母)의 범죄! 손녀(孫女)를 독살하려던 무서운 사실이 二十七日 오전 十시 백주 진위군하(威郡下)에서 발생되었는데, 이제 그 사실을 알아보면 진위군 고덕면 동고리(振威郡 古德面 東古里) 一四三번지 이병수(李炳壽, 三二)는 소화 六년 음 三월 三十일 동지 김학만(金學萬)
1933년 1월 1일일본인이 보는 에 광고평택 일본인 현황 파악 중요 자료 “謹賀新年. 平澤在鄕軍人分會 分會長 石見龜藏. 京釜線 平澤 目良農場 場主 目良廣 電話 五二番. 京釜線 平澤驛前 大成商會. 地方法院 平澤出張所 主任 岡田熊一. 平澤麴子製造場 理事 金 宅起. 京釜線 平澤驛前 中華料理 隻鴻舘 (중략) 平澤學校組合會 議員(イロハ順)
1934년 11월 8일진위·안성 하천 수리조합 갈망진위흥농회사 야마다 등 발기 “安城, 振威의 兩河川의 治水에 關係가 有한 擴大廣漠한 耕地에 對하여 完全한 水利의 便을 供給함은 多年 關係 里民의 渴望하던 바인데, 當局에서도 ◯히 此點에 着眼하여 數年前부터 兩河川에 對하여 基本調査 中이더니, 過般 大略 調査의 完了를 告한 結果 水利事業이 甚히 有望
1934년 11월 8일밤만 되면 4~5인 작당, 주점에서 행패이기영여관서 잠자리에 드는 손님 구타 “경기도 진위군 북면 봉남리(振威郡 北面 鳳南里)에는 요새에 一부 불량배가 밤만 되면 작당하여 돌아다니며 주점 등에서 폭행함이 빈빈한다는 바, 들은 바에 의하면 지난 八일 밤에도 모모 四五인이 작당하여 봉남리(鳳南里) 이기영(李基榮) 여관(旅館)에서 잠자려고
1936년 3월 15일소작인 피 빨아먹는 지주 횡포관에 진정, 총독도 면담하기로 “(전략) 진위군 덕천부락은 거의 대지주 정남권(鄭南權) 외 몇 명의 소작인이 있어서 소작미(小作米)의 양정(量定)은 종래 소작인 지주와의 합의 형식으로 거의 지주가 독단을 하였는데, 본년 말은 그 지방 일대가 해마다 없는 농사가 흉년이 되어 아주 적지(赤地)가 되었지만은 지주
“평화는 서로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올바른 평화교육 정착 노력미군기지, 끝낼 수 없는 숙제 “평화는 서로의 다양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평화를 위해서는 싸움이 일어나도 잘 풀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죠. 이러한 의미에서 평화교육의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지난 2017년 2월 18일 평택평화센터 창립
1936년 3월 15일돈 모아 소개받은 여자와 결혼장터에서 돌아오니 짐 싸 도주 “계란 행상을 하여 푼푼이 모은 돈으로 장가를 들어서 살림을 차렸더니 계란 행상 나간 틈에 새로 맞은 마누라가 이부자리까지 들고 도망하고 없으니 잠자리할 침구나 찾게 하여 달라고 十五일 본정서로 찾아가서 호소한 박명한 이가 있다. 그는 진위군 평택면 평택리(振威郡 平澤面 平澤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