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에 있는 한광학교 교가도 충혼산 기슭에 진리를 심어… 로 시작을 하는 충혼산. 하지만 지금은 제 이름을 찾아서 덕동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덕동산’ 이라고 부르면 ‘춥고 배고프던’ 시절 충혼산에 얽혀있던 정겨운 이야기 맛이 다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주세요’라고 시켜야 입안에 감칠맛이 돌지 ‘자장면 주세요’하
지난 31년 이라는 세월 살아왔던 고향이 그립다. 고향을 떠나 나그네 삶속에 어연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중국으로 또 태국으로… 이렇게 삼국을 거쳐서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먹고살기 힘들 때는 사람은 도시 살고 소는 산으로 가야 한다는 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맞더라고 느껴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시내서는 그럭저럭 사는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역사도 기록을 해야 역사로 남습니다. 이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 세상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이름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디디며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름도 지었습니다.흐르는 내 위에 작은 다리를 놓고는 ‘잔다리’라고 불렀고 조개를 잡아먹고 버린 조개무지가 있던 곳을 ‘조개터’라 불렀습니다. 오
‘문화’ 보다 더디 자라는 생명은 없다.인간이 먹고 사는 일과 하등 관계가 없는 문화는 돈을 먹고 자랍니다. 집안에 그림이 걸려있지 않다고 해서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은 일이 없다고 장가를 못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림과 클래식음악을 ‘귀족문화’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문화는 우리생활에 직접적인 영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祭基洞.그러니까 조선시대 임금이 논농사를 지어야 할 봄철에 오랜 가뭄이 들면 문무백관文武百官들과 함께 행차해서 동대문-흥인지문興仁之門을 지나 제기동에 이르러 오랫동안 가뭄이 든 원인은 임금이 부덕해서 하늘이 내린 벌로 하늘 뜻을 어긴 것이 있으면 어린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그 노여움을 푸시고 비를 내려주십사 하고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던
무릇 남자들 세계에서 ‘선배’란 하느님과 동기동창생이요 부처님과도 동기생이며 칠성당처럼 모셔야 할 하늘같은 존재입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길에 악을 쓰고 발버둥 쳐서 겨우겨우 소위 재벌기업에 발은 들여놓았지만 돈도 백도 없어 하는 일마다 이리 치이고 저리 밀리는 살벌한 사무실 ‘전쟁터’에서 오직 학교 문門을 같이 드나든 동창생에 ‘선배’라는 나일론 줄
해마다 우리나라에서 추석을 앞두고 나오는 배는 거의가 다 조생종 ‘장심낭’입니다. 먹어보면 물기가 적고 또 육질에는 모래알처럼 깔깔한 것이 들어있어서 먹을 때마다 입안에서 알갱이가 씹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배 가운데 최고 명품인 ‘신고’ 배는 추석이 지나고 날이 조금 더 차져야 출하됩니다. ‘장심낭’은 육질이 질기지만 저장이 되지 않는데 반해 육질
지나간 역사에서 사람들에게 재미와 흥미를 주는 것은 궁궐 안에서 학문을 갈고 닦은 사관들이 쓴 ‘실록實錄’에 기록되어져 있는 정사正史가 아니라 역사의 뒷전에서 일어난 이야기이거나 여인네들의 치마폭에 감추어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 즉 야사野史입니다.그러니까 조선 명종 임금 때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 기록되어져 있던 천마산을 호랑이처럼 넘나들던 ‘임꺽정’이란
학교가 파하자마자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와 골목길로 돌아서는 순간 포장마차 리어카가 눈에 띄었습니다.엄마는 포장마차 곁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아버지는?-음. 포장마차에 씌울 비닐지붕을 찾으러 가셨다.-덕산이도 갔어?-그럼 걔가 집에 있겠니. 벌써 네 아버지를 따라 나섰지.책가방도 벗지 못한 채 수돗가에 놓여있던 물통을 들어다가 리어카에 싣는데
‘쌍용자동차’를 이야기 하려면 ‘콧수염’을 심벌마크로 격동의 한 시대를 넘은 성곡省谷 김성곤金成坤 회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54년 창설된 ‘하동환자동차’는 소방차나 건설장비, 레미콘 차, 버스 등 특수차량 제작이 주력 기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국가의 미래를 내다본 한 지혜로운 젊은 청년 하동환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드럼통을 일일이 두드려 펴
아침에 출근할 때 한 번 그리고 종일 세워두었다가 저녁에 퇴근할 때 한 번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자가용차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남들이 타고 다니는 ‘자가용’을 갖고 싶어 하면서 우리네 공동체 의식은 부서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죽자 사자 돈에 매달리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다 어디 가고 돈만
의식전환김해규 선생님 말씀 모두 다 타당성 있는 제안입니다. 그러나 시설과 제도에 대한 개선에 앞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몇 가지 생각들을 적어봅니다. 그림 전시회가 열리는 전시장이나 박물관 한두 개가 들어선다고 그 지역의 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놀이문화를 위한 시설을 늘린다고 ‘지역사회 문화’가 향상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합니
나는 초등학교 3 학년 김현준입니다.학교공부가 다 끝날 때가 되어가는데 창밖에 봄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날씨도 쌀쌀합니다.나는 금세라도 아빠가 우산을 들고 복도에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공부가 잘 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아빠를 보면 나에게 -야! 김현준 니네 할아버지 우산 가지고 오셨다! 라고 놀려댈 것이 뻔합니다.
물과 같이목사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지 어언 30년.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물입니다. 아무 맛도 없는 물, 하지만 사람들은 그 물을 먹을 때마다 다른 맛을 느낍니다.물! 무엇을 먹고 먹는가? 언제 먹는가? 무엇을 하고 먹는가? 어디에서 먹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물맛입니다.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물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맛을 주지 않습니다. 먹는 사람이
‘지나가다’님의 글노을 정말 좋아하는 동요인데 우연히 작사하신 선생님 블러그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예쁜 노래 만들어서 듣게 해주심 정말 감사합니다.근데 이런 질문 드려도 되나 모르겠지만, 각종 글에 작곡하신 분이 안호철 선생님으로 표기되어 있던데 선생님 글에는 최현규 선생님이라시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좋아하는 노래는 작사·작곡 하신 분도 눈여겨보는
군문리 다리橋, 만근다리橋군문리 다리란 이름은 군문리 앞을 흐르는 안성천 위에 놓여있는 다리여서 군문리 다리라 부르고 만근다리란 조선시대 한양에서 과거를 보고 낙방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던 충청, 호남지방 선비들이 과거낙방에 상심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리가 천근만근이나 되어 쉬어가던 곳이었다고 해서 ‘만근’다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만근다리는 지금 차
1970년대가 시작되면서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에서 막 산업사회로 발 빠르게 접어들고 미국에서는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으로 공화당 출신 닉슨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월남전은 막바지로 치달으며 국제정세가 어수선하던 시기였습니다.지금은 중국에서 사시사철 셀 수 없이 황해바다를 건너오는 황사바람이 그때만 해도 3, 4월이면 한두 번 쯤 안중 쪽에서 불어와 노란
감자가루를 주원료로 반죽을 해서 국수를 뽑는 함흥냉면과 가자미 식혜, 그리고 메밀가루가 주원료인 평양냉면과 빈대떡은 북한의 대표적 음식입니다.그래서 북한에서는 웬만한 집에 가면 나무를 깎아서 만든 국수틀을 늘 부엌에다 걸어두고는 툭하면 밀국수를 뽑아먹거나 모밀국수, 냉면국수를 뽑아 한겨울 찡한 동치미국물에 말아 털도 다 뽑지 않은 삶은 돼지고기를 고명으로
평택역에서 시외버스로 고작 두 정거장, 천천히 걸어가도 몇 분 걸리지 않는 유천리.유천리에서 안성천이 흐르는 다리 하나를 넘으면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안궁리입니다. 그래서 평택은 행정구역이 경기도지만 오가는 말에는 충청도 말씨가 많습니다. 처음 평택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밑창’이라는 말을 듣고는 너무 낯설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색하기도 해서
“교장선생님, 식사하신 그릇 이리 주세요. 저희가 설거지 할게요” “내가 먹은 밥그릇은 내가 씻어야지 누굴 시켜요! 산에 놀러왔으면 똑같이 일을 해야지. 안됩니다”1970년대 초. 평소 낚시가 취미이던 교장선생님께 한 번만 같이 산에 가시면 다음부터는 절대 모시고 가지 않겠노라 말씀드리며 산행을 권하고 권하기를 2년,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