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8월 24일순사 사칭해 동네 유부녀 납치다른 마을로 데려가 감금·성폭행 “진위군 포승면 방림리(振威郡 浦升面 芳林里) 어◌◌(魚◌◌)의 아내 이◌◌만(李◌◌, 二一)이를 순사라고 사칭하고 데려다가 열흘 동안이나 감금 윤간(監禁輪姦)한 동리 박◌`
1925년 11월 5일어머니와 살던 15세의 소년몰래 떠난 엄마 찾아 서울로 “진위군 병남면 비전리(振威郡 丙南面 碑前里) 김백순(金伯順, 十五)이란 소년은 구년 전에 그 아버지가 죽은 후 모친 김씨(金氏, 二一)과 함께 외로운 생애를 서로 의지하고 지내오던 중 지난 오월 이십팔일에 백순이가 산으로 나무를 하러간 사이에
1925년 11월 5일한강에서 유서를 남기고 투신봉투에서 주소와 이름만 확인 “작 오일 오전 두 시경에 한강 인도교(漢江 人道橋)에 청춘남녀가 나아가 서로 껴안고 투신하여 정사하였는데, 그 청춘남녀는 오일 오전 한 시경에 한강통(漢江通) 십오번지 삼복(三服)이라는 요릿집에 가서 술을 마신 후 그 요릿집에서 필묵을 얻어 진위군 현덕면 화양리(振威郡 玄德面 華
1921년 2월 9일물가 내려갔지만 평택은 불변타 지역민, 음식 맛없다 욕해 “근래 여러 가지 물건 값은 많이 떨어진 모양인데, 우리 평택 음식점하는 사람들은 주책없이 밥값만 술값만 받고 맛없이 하여 준다고 타관 사람들이 욕을 하니, 나도 평택 사람이지만은 맛없고 값을 받기는 우리 평택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하겠던 걸. 참 멀쩡한 음식장사를 값싸고 많이 팔 생
1930년 5월 19일아내 친정 행, 다른 여자와 혼인고부 갈등에 남편·시아버지 공모 “시내 황금정(黃金町) 이정목 36번지 윤아지(尹阿只, 二三)는 소화 이년 십일월 스무살 때에 진위군 병남면 통복리(振威郡 丙南面 通伏里) 이백 칠십 육번지 박기선(朴冀璇)에게로 시집을 갔던 바, 시집을 가던 길로 고부(姑婦) 간에 화
1925년 5월 25일데릴사위 남편, 성장하자 폭군아내 팔아 술값 마련하려 폭행 “시내 한강통(市內 漢江通) 삼십번지 박선경(朴善卿)은 자기 남편인 진위군 병남면 유천리(振威郡 丙南面 柳川里) 전성룡(全成龍)을 상대로 경성지방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하였는데, 그 이유는 전기 박선경의 집에서 전성룡을 어릴 때에 데릴사위로
1922년 12월 2일면사무소 직원, 세금을 안냈다고 찾아와납부 영수증 내보여, 같은 피해자 많아 “진위군 병남면 합정리 신홍균(振威郡 丙南面 蛤井里 申弘均)은 병남면사무소로부터 발행한 대정 십일 년도 제2기분 호세(第二期分 戶稅)의 납입고지서를 받고 기일 안에 돈 삼원 삼십 이전을 면사무소로 갖다 내이고 영수증까지 받았는데, 그 후 군청과 면사무소에서 사
1929년 10월 10일사랑 없는 남편, 시부모 학대 가출겨우 찾은 아내 죽어도 집에 안가 “진위군 고덕면 해창리(振威郡 古德面 海倉里) 구십번지 김정철(金貞哲, 18)의 처 김성녀(金姓女)라는 열아홉 살 먹은 여자는 시가에서 시부모의 학대와 어린 남편의 사랑 없는 살림에 견디지 못하여 지난 사월 이십일에 홀로 표연히 짐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시내 관철동(
1924년 9월 13일총 교육비, 5만 3990원 편성가장 많은 지출, 보통학교비 “진위군(振威郡) 학교비(學校費) 금년도(今年度) 총예산(總豫算)의 세입세출(歲入歲出)은 좌(左)와 여(如)하다고(하략)”(『동아일보』 1924년 9월 13일)‘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며 수단’을 교육이라 한다. 뿐만 아니라 교육은
1924년 3월 30일인구 6만 3090명으로 집계평택역 위치한 병남면이 중심 “진위군(振威郡) 각면별(各面別) 호구수(戶口數)는 삼월(三月) 말(末) 현재(現在) 조사(調査)에 의하여 여좌(如左)하다고.(하략)”(『동아일보』 1924년 7월 4일)인구조사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국가 과제 중 하나다. 인구조사의 목적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나라의 살림
1928년 6월 1일현금 25원 든 지갑을 강탈평택경찰 범인 평택서 잡아 “지난 일일 오전 육시 삼십분경 진위군 북면 봉남리(振威郡 北面 鳳南里) 우육행상 길순복(吉順福, 27)에게 어떤 자가 들어와 소를 팔 것이 있으니 현금을 가지고 오라고 한 후, 산 가운데로 끌고 들어가 현금 이십오원이 들어있는 지갑을 강탈하여 가지고 달아난 사건이 있었는데, 소관 평
1924년 9월 27일진서청년회·권농회 주최‘피뽑기대회’ 광주리 우승 “진위군(振威郡) 청북면(靑北面) 진서청년회(振西靑年會) 급(及) 권농회(勸農會) 주최(主催)와 동면(同面) 유지(有志) 이강세(李康世), 이기학(李起鶴), 김화식(金華植), 안영균(安英均) 제씨(諸氏)의 후원(後援)으로 지난 구월(九月) 이십칠일(二十七日)에 동(同) 면소(面所) 내(內
1925년 7월 10일조카딸 결혼시킨다고 가짜로 중매를 부탁하고선을 보려고 가다가 산골짝에서 강도로 돌변 “경기도 진위군 오성면(京畿道 振威郡 梧城面)에 원적을 두고 주소 미정인 박명복(朴命福, 32)은 지난 칠월 십일 백주대로상에서 금품을 강탈한 사건으로, 시방 본정서(本町署)에 인치되어 엄중히 취조를 받던 중인데, 그 내용을 알아본즉 자기 조카딸을 시집
1924년 6월 7일마을 뒷산에서 도자기 발굴온전한 18점, 시가 수천여원 “진위군(振威郡) 북면(北面) 봉남리(鳳南里) 유정기(柳定基)는 거(去) 칠일(七日)에 봉남리(鳳南里) 뒤 장산(長山)에서 고려기(高麗器)를 발굴(發掘)하였는데, 다수(多數)는 파손(破損)되었고 완전(完全)한 고물(古物) 십팔점(十八點)을 채득(採得)하여 진위경찰서(振威警察署)에 보
1928년 1월 25일불상 두 개를 훔쳐 달아나당시 시가 150원으로 추정 “지난 이십오일 오후 열시경에 경기도 진위군 부용면 객사리(京畿道 振威郡 芙蓉面 客舍里) 망계사(望溪寺)에 도적(盜賊)이 벽장 뒤 방의 벽을 파괴하고 침입하여 법당에 안치된 대관음상(大觀音像)과 지장상(地藏像) 시가 약 백오십 원의 불상을 절취 도주한 것을 비로소 이튿날 아침에 이르
1937년 4월 17일봄을 맞아 집수리 중 사고기둥 교체하려다 대형 참사 “十七일 오후 세시 경 경기도 진위군 평택면 합정리(振威郡 平澤面 蛤井里) 이조학(李兆學, 四七)은 자기 집을 고치고자 부근 인부 이금세(李金世, 三八) 임성극(林成極, 二七) 이상윤(李 相潤, 四二) 등 세 사람과 같이 일을 하고 있던 중, 별안간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전부 그 밑에
1937년 7월 17일술 즐기는 아들 버릇 고칠 작정쥐약 먹겠다 위협, 아버지 사망 “지난 十七일 진위군 북면 갈곶리 강위패(姜威敗)는 자기 아들 강대음(姜大飮)이가 술을 몹시 먹는 것을 버릇을 가르칠 작정으로 쥐 잡는 약을 먹고 죽는다고 위협하다가 결국 아주 죽어버렸다고 한다”(『매일신보』 1937년 7월 20일)오늘날에는 ‘쥐 잡는 날’이 없어졌지만,
1931년 11월 1일기부·보조금 1만원으로 설립7월 16일 인가, 11월에 개교 “진위군振威郡은 현재 十一면으로 되어 있으나 미구에 서면西面과 부용면芙蓉面이 합면될 것이라 하므로 장차 十면으로 될 것이며, 그 중에 현덕玄德과 고덕古德 양면에 보통학교가 없어 아동교육에 많은 결함을 느끼게 되므로 오래전부터 고덕면의 유지들이 동면에 학교를 설시코자 노력 중이
1935년 4월 11일서울출발 부산도착 제6여객열차인명 피해 없어, 부주의로 발생 “十一일 오후 영시 三十五분에 경성을 떠나 부산으로 가는 제六 여객열차가 평택역 구내에서 식당차와 二등차 二량이 탈선되어 一시 대소동을 하였는데, 다행이 인명에 손해는 없었고 그 같이 탈선된 원인은 포인트를 돌리고 잠그지 않았다가 열차가 진행하자 레루가 진동되어 포인트가 벗겨
1932년 2월 22일13개 양조장, 연간 7200석 생산당시 인구 1인당 257원 14전 소비 “미곡(米穀)의 산지(産地)로서 아직도 이름이 있는 평택을 중심으로 十一면에 나누어 있는 진위군(振威郡) 전체에 산재하여 있는 十三개 소나 되는 양조장(釀造場)에서 一년간 양조 석수는 七,二○○석(石)으로 그 대가(代價)가 一八○,○○○원이라고 하니, 이것을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