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들에게 한 번 더 사랑을 전해자신의 내면이 더 성숙해지는 호스피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부자연스러운 연명을 위한 의료행위를 하지 않고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치료를 하면서 심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도움을 주어 인간적인 마지막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목사 남편과 시작한 호스피스“처음엔 목사인 남편과 함께 지역을 위한 봉사를
알려진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어화폐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가 중요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자신이 살던 세상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고 사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병역의무와 같이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되어진 의무와 함께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자발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
신뢰와 기본 지켜온 농민출신 4선 시의원평택의 미래 장기적인 안목으로 나아가야 민의를 대변하는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주민 신뢰와 자신의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처음 출발했던 농민의 자리를 잊지 않고 평택시의회 제2~5대까지 16년간 시의원이라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배연서 제5대 의장은 항상 자신의 근본을 잊지
한국에 온지도 어느덧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만 해도 산 설고 물 설은 낯선 땅에서 “행복하고 좋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한국에 대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만 듣고 민주주의와 자유, 삶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하는 다른 한편의 무거운 책임감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왔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만들어가고 책임져야
아이 가슴에 묻었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어혼자 헤쳐 나가도 현실 직시하고 당당해야 우리가 그저 무심히 보게 되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까. 그 많은 사연 중에서도 특히 인간으로서의 감내해야만 했을 모진 고통의 흔적을 우연히 엿보게 될 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사람의 손을 잡고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싶은 충동을
작지만 소중한 대안 만들고자 노력 할 터부족함 많은 삶, 공인으로서는 최선 다해“같은 시대를 살아온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저 또한 학생운동을 거치면서 잘못된 사회를 바꿔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시대적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평택지부 실무간사를 맡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돼 시민운동가의 길
경로당은 노인들의 행복집합소가 되어야남은 인생은 봉사하는 행복전도사 될 터 노인문제가 국가가 책임지고 대책마련에 나서야 할 만큼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수명의 증가 만큼 삶의 기간도 연장되었고 그에 따라 노인들의 삶의 질에 관한 얘기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평택만 해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43만 명 중 4만 5000여명으로 10
아침에 출근할 때 한 번 그리고 종일 세워두었다가 저녁에 퇴근할 때 한 번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자가용차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남들이 타고 다니는 ‘자가용’을 갖고 싶어 하면서 우리네 공동체 의식은 부서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죽자 사자 돈에 매달리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다 어디 가고 돈만
연봉 8천만 원 대기업 간부, 실업자로 전락말단 공무원이지만 봉사하는 데 보람 느껴 ‘도전’이라는 말 이면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있고 희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첫 걸음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할 걱정은 없겠지만 그에 따른 희망도 없다. 정
예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지속되어야 하는 것어릴 때부터 사람의 도리 다하는 禮 가르쳐야공자는 논어에서 ‘입어례(立於禮)’라는 말을 강조하며 ‘예로써 바로 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굳이 성현의 옛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점이 무엇일까를 잠시만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찾아질 수 있다. 혼란스러운 사회적 현상들의 단초는 바로 ‘예’를 잃어가
어느덧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온 나날들이 3년이나 지나갔다. 그동안 정신없이 사는데 급급하여 바쁜 삶을 뒤돌아 볼 사이도 없었던 것 같다.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보는 계기로 지난 세월을 잠시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나의 모습은 참 촌스럽고 어수룩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제2의 인생을 꿈꾸면서 희망으로 가득 차있었다.
노래하며 마음의 짐 덜고 사회와 유대 맺어장애인과 노인들 위해 봉사하는 삶 살고파 한 시대를 풍미하는 노래에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서민들의 꿈과 사랑과 애환이 담겨있다. 때문에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현재의 마음을 달래고 그러는 가운데 노래 가사와 자신의 처지가 딱 맞아 떨어질 땐 급기야 노래를 부르다 목 놓아 울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노래가 가지는 치유
“역사교사도 고장에 무지한 부끄러움”“보는 것이 아닌 행하는 교육이 중요” “요즘 아이들의 정보 습득력은 어른들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받아들여진 정보들이 여과 없이 아이들 뇌리에 새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은혜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김일 교사는 요즘 아이들을 마땅찮게 말하는 기성세대들을 볼 때마다 맘 한구석이 무거워
대학 졸업 후 농촌에 내려와 뿌리내려김준 선생·고건 국무총리와 인연 맺어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노래로 한때 전국을 똘똘 뭉치게 만들었던 새마을운동은 어떤 정치적 이념에서 벗어나 각 마을을 단합하게 만들고 잘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재조명되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뜻을 지닌 새마을운동은 1970년 ‘새마을가꾸
의식전환김해규 선생님 말씀 모두 다 타당성 있는 제안입니다. 그러나 시설과 제도에 대한 개선에 앞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몇 가지 생각들을 적어봅니다. 그림 전시회가 열리는 전시장이나 박물관 한두 개가 들어선다고 그 지역의 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놀이문화를 위한 시설을 늘린다고 ‘지역사회 문화’가 향상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합니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걸 느껴장관상은 봉사 더 잘하라고 주는 상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나누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밤을 낮 삼아 공부하는 학생들로 넘쳐나는 요즘, 고등학생 임에도 불구하고 봉사동아리 회장직을 맡아 동아리 회원들을 이끌며 많
문화, 시민의 삶을 풍족케 하는 수단끼 있는 아이들, 평택의 소중한 자산 “입시 공부를 위해 들어간 절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형님을 만났습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그 형님이 그러더군요. ‘이번에도 떨어지면 다 그만두고 영화배우나 하련다’ 정말 그저 스쳐지나가듯 들은 그 말 한마디가 제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결국 저를 연극계로 이끌었죠”4수 끝에 들어간 대학
4남매가 모두 목회자의 길 걸어가쉬운 길은 아니지만 보람 있는 일 현직에서 은퇴하고 난 이후의 삶은 제2의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해오던 생활과는 달리 시간적·정신적인 여유가 늘어나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보게 되는 시기도 바로 은퇴 후다. 그러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시기인 만큼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인생을 설계하느냐에 따라 노
하나원을 거쳐 하나센터를 수료한 제가 처음으로 한 일은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 위해 운전면허시험장을 찾은 것입니다. 남한에서는 운전면허증은 필수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운전면허증을 취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집 근처에 있는 운전면허학원에 가서 접수를 하고 이론 교육을 받은 후 다음날 필기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합격이라 기쁘기도 하고 우
소 생김새나 얼굴만 봐도 ‘너는 우리소’축산업 하며 고통참고 인내하는 법 배워 사료가격이 크게 오르고 공급과잉과 소비위축으로 인해 축산농가가 점차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불황의 터널에서도 평택시 팽성읍 대사리 진영농장의 오학영 씨네 한우는 올해 전국한우경진대회에서 고급육생산 어미소부문 최우수를 차지해 전국에서도 최고 한우의 인증을 받아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