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주변의 수많은 사건들은
우리시대의 자화상이며
후대에 전승할 역사자료다.
과거의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로
박물관이 건립되어야 한다면
현재의 기억을 전승하는 장소로
‘기록보존소’가 필요하다

 

 

 

▲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세월호참사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을 분노케 한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정부는 청해진해운 유병언 일가의 탐욕에 모든 치부를 덮어버렸지만, 국민들은 침몰하는 세월호처럼 부실한 정부의 해운항만체계, 재난대비 구조체계, 정부 책임자들의 부도덕하고 비상식적인 태도를 목도했다.

당시 세월호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은 두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첫째는 철저한 원인규명이었고, 둘째는 재발방지였다. 그 방법으로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하고 ‘진상조사위원회’ 구성할 것을 제시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 동안 세월호 사건은 아직 미결상태다. 이를 놓고 사회적 갈등도 대단하다. 지난 3월에 발표된 ‘특별법시행령’도 진상을 조사하고 재발방지를 하겠다는 의지보다는 문제를 덮어버리고 봉합하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국민들의 시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유가족들과 연대하여 끝까지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 장치를 만들겠다는 입장, 다른 하나는 정부와 일부 보수언론의 주장을 수용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부류들을 비판 또는 비난하는 입장이다. 이처럼 우리 온 국민을 슬픔에 빠뜨렸던 엄청난 사건을 놓고도 다른 ‘시각차’ ‘온도차’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시각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후대 사람들이 세월호참사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기록을 독점하고, 기록을 통해 우리시대의 기억을 독점하려는 정부와 보수언론 앞에,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의 기억은 시간에 따라 잊힐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억투쟁이다. 각자의 정치사회적 입장, 계급적 입장에 따라 자신들의 기억을 후대에 전승하려 한다. 가진 자, 부도덕한 방법으로 권력과 재물을 획득한 자들, 진실이 두려운 부류들은 ‘역사적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기록과 매체를 독점하고 진실을 호도하려는 음모도 서슴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들, 일제강점기 친일파들, 해방 후 독재 권력에 기생하며 부정 축재했던 인사들도 이런 부류였다. 이들에게 역사적 진실은 위험한 발상이다. 과거 이들의 역사에 대항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무기는 ‘기억’이 전부였다. 일부 양심적 지식인들만이 기록을 투쟁했다. 기억은 오래 가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 흐려지고 불투명해져서 뭐가 뭔지 분간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도 100년쯤 뒤에는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목소리는 기억되지 않고 ‘세월호법 시행령’이나 정부 측의 공식기록만이 객관적 사실로 남겨질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역사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과거를 진실하게 이해하는 데 장애요소다. 다행히 세월호 참사에는 다양한 민간 기록자들이 참여하여 유가족들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기억의 평등화 작업이다.

근래 평택지역에도 많은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평택항 경계문제나 고덕국제신도시 문제 같이 미래발전의 초석이 될 사건부터, 10여 년 전의 미군기지이전 반대투쟁과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쌍용자동차 문제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들이 발생했다. 우리주변의 수많은 사건들은 우리시대의 자화상이며 후대에 전승할 역사자료다. 기억을 전승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공적(公的) 영역에서는 ‘기록보존소’를 건립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특정계층의 기억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위에까지 모든 부류의 기억들을 종합하여 저장하고 전승하는 일은 우리시대의 사명이다.

필자는 지면을 빌려 ‘평택기록보존소’ 설립을 제안한다. 과거의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로 박물관이 건립되어야 한다면, 현재의 기억을 저장해 후대에 전승하는 장소로 ‘기록보존소’가 필요하다. 시의회는 기록에 관한 조례 제정을 해야 한다. 시민들도 자신들의 기록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후대를 위한 우리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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