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 바람에 이어
반퇴가 사회적 이슈가 된 지금
노후설계가 돈만으로 안 된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축복이라고
몸만 성한 걸 뜻하랴.
정신적으로 공허한 외로움은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  이수연 전 부이사장
한국사진작가협회

백수(白手)의 5단계. 첫 단계인 ‘화백’은 화려한 백수다. 은퇴직후의 넉넉한 주머니 사정과 시간적 여유로 가끔은 바람까지도 피울 수 있단다. 두 번째인 ‘반백’은 비자금도 떨어지고 시간만 남는 단계지만 아직은 누군가에게 기대어 버틸 수는 있는 단계. 세 번째인 ‘가백’은 밖에 나가봐야 눈치만 보여서 집에 콕 박혀 있다가 누군가가 불러주면 나가는 단계다. 네 번째인 ‘불백’은 불쌍한 백수. 불러줄 이도 형편이 비슷한지라 신경 써주지 못하는, 존재감조차 희미한 단계다. 마지막으로 ‘마포 불백’은 마누라마저 포기한 불쌍한 백수라는 뜻이다. 이 우스갯소리의 이면에 우리 현대사의 질곡(桎梏)이 담겨 있다면 너무 감상적일까. 오직 먹고살기 위해서 개인을 포기한 채 온갖 설움을 참아내며 조직이나 직장에 모든 것을 바쳐야 했지만 막상 은퇴하고 나니 자기를 위해 즐길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현재 기성세대의 현실을 꼬집은 것 같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중산층의 기준을 외국어 구사, 직접 즐기는 스포츠, 다룰 줄 아는 악기 한 가지, 남들과 다른 요리 만들기 등을 꼽는다는데 우리나라는 부채 없는 30평 이상 아파트, 500만 원 이상의 월급, 2000cc급 중형차 그리고 1억 원 이상의 예금 잔고에 1년에 한 차례 이상 해외여행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어느 신문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개인적 가치를 중시하는 서구의 풍토와 경제적 우위를 내세우는 우리의 사고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한데 그나마 나이 들어 재산 분배하고 기력 떨어지면 무엇으로 여생을 보낼까 자못 걱정이다. 우리나라의 기대 수명이 80세를 넘어섰고 재해나 사고가 아니면 100세를 기대하는 요즘, 60세 은퇴한 이후 나머지 인생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광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명퇴 바람에 이어 이제 반퇴가 사회적 이슈가 된 지금 노후설계는 단순히 돈만 갖고 안 된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축복이라고 몸만 성한 걸 뜻하랴. 정신적으로 공허한 외로움은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그나마 배우자도 믿을 게 못되는 것 같다. 정작 은퇴를 기뻐해주고 편히 쉬라는 격려를 해 줄줄 알았는데 은퇴 스트레스를 배우자가 더 심하게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니 말이다.

은퇴 1년째에 당사자의 건강이 나빠지는 비율이 28.6%인데 비해 배우자는 40.7%나 된다는 것이다. 가구소득 감소와 함께 배우자와 부대끼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라는데 그야말로 ‘삼식이’ 스트레스다. 3~4년이 지나야 건강이 회복 되는데 이때는 반대로 배우자가 더 빨리 회복하고 당사자는 더디다는 것으로 보아 배우자는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당사자는 점점 더 소외되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결국 자기 관리는 자기가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퇴 후 재취업 등을 통해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도 있지만 극히 소수에 해당할 뿐 아니라 은퇴이전에 누렸던 수준까지 가기가 쉽지 않고 그 기간도 매우 짧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스스로 버티고 즐길 수 있는 방법, 우스갯소리로 ‘혼자서도 잘 노는 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봉사든 취미든 새로운 학습이든 관계없다.

개인적으로는 전문적인 취미를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취미에도 ‘전문’이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예술’로의 입문을 말한다. 나이 들어도 지속할 수 있고 생각보다 경제적 부담도 없다. 또 ‘작품’이라는 성취감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노력하는 만큼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 즉 예술가 칭호도 덤으로 따라온다는 것이니 그야말로 반퇴 시대에 ‘딱’ 아닌가. 아직 몸과 마음이 같이 움직일 때 시작할 일이다.

“김국장님 사진 배우러 언제 오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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