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사신문·민세안재홍기념사업회 특별기획 - 시대의 지식인 詩人 김지하에게 듣는다

민세 사상의 핵심 신간회 연구는 ‘평택의 소명’

▲ 제2회 민세상 수상자 김지하 시인
평택시사신문에서는 민세안재홍기념사업회와 함께 지난해 11월, 제2회 민세상 수상자 중 한 명인 김지하 시인과의 특별 인터뷰를 통해 민세사상에 입각한 향후 평택의 발전방향과 우리나라의 정치상황, 그리고 전반적인 문화현상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박정희 정권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수형생활을 했고 좌파진영이 극단이던 시절에는 그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으며 이 시대의 지식인으로 살아온 김지하 시인, 그가 이번 인터뷰를 통해 들려준 것은 바로 현 시대 상황을 통해 비춰본 민세사상과 그 핵심인 신간회의 부활, 그리고 그를 위해 평택이 해야 할 소명 등이었다.

■ 김지하와 정체성
“할아버지는 동학당
아버지는 유명한 공산당
나는 좌익인 게 틀림없어”

우리 아버지가 목포에서 유명한 공산당이야. 내 나이 13살에 원주로 쫓겨 왔지. 중학교 때부터는 여기서 학교를 다녔어. 그게 지금 다시 원주로 온 계기가 된 셈이지.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는 동학당, 아버지는 공산당 아주 콩가루 집안이었어. 난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마르크스 자본론, 독일이념 등을 다 읽었지. 아버지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것이 뭔지 알고 싶었거든. 난 조금은 좌익인 게 틀림없어. 그런데 우익도 있어. 내가 쓴 ‘사상기행’이라는 책은 자칭 공산당이라는 놈들이 동학을 제 멋대로 떠드니까 동학의 근거를 알려주려고 쓴 거야. 동학은 전봉준이 아니라 손화중이 중심이거든. 그걸 제대로 알아야 해. 매천 황현이 쓴 책이 두 개가 있는데 동학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대비돼. 하나는 동비기략(東匪紀略)인데 동학을 굉장히 저급하게 취급해. 미신적인 걸로. 그런데 오하기문(梧下記聞)을 보면 없는 놈 먹이고, 바보들 개가시키고, 나쁜 놈 죽이지 않고 볼기만 쳐서 내보낸다는 말이 나오지. 이건 규율이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매천이 칭찬한 거야. 그 규율의 근거와 주체는 바로 손화중이야. 민세의 신간회도 근거를 알아야 해. 정체를 알아야지

■ 르네상스의 도래와 사회현상
“피렌체의 막말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르네상스도 없어.
현재 우리나라의 현상들을
살펴보면 딱 그렇지”

내가 민세의 영향을 받은 건 대학시절 르네상스 공부를 할 때였어. 혼돈의 미학, 추의 미학, 질병의 미학이 전부 르네상스에 연이어서 나오는 거거든. 르네상스 없이 서양의 오늘날 세계지배는 불가능하지. 그런데 르네상스 같은 대문명은 막말 속에서 나오는 거야. 15세기 피렌체 르네상스는 순 상소리가 대부분이지. 정치적으로도 개판이고. 제 형제도 죽이고. 베네치아는 좀 점잖은데 그런대로 또 요란해. 현재 우리나라의 현상들을 살펴보면 딱 그렇지. 나꼼수나 아이들이 쓰는 막말도 그렇고. 오늘날 이런 막말에 대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느니 막말을 때려잡아야 한다느니 우리말 너무 헤프게 쓴다느니 하지만 그건 다 시대가 가르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공식적인 표현까지 썼어. 피렌체의 막말이 없었으면 오늘날 르네상스도 없다. 르네상스 없이 군사 정복으로는 세계지배 못한다고. 뭐든지 한 현상이야. 그런 현상 배후에 우리나라 국운이 르네상스로 가고 있는 거야. 틀림없어.
지금의 젊은 애들이 나꼼수와 안철수를 지지하는 거, 붉은악마, 촛불시위, 한류열풍, K-pop 도 우리 역사와 결코 무관한 게 아니야. 여자들과 애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조직이나 명령계통이 일체 없는 현상들도 르네상스의 전조지. K-pop은 국운이야. 돈을 봐야해.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돈이 외국으로부터 오는 프러포즈가 있는 거야. 난 한·미 FTA는 잘했다고 칭찬해. 지금 미국이 한참 아쉬울 때 아냐. 월가 이후에. 그때 미국에 손을 내미는 거. 전부 반역자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그럴 때 손을 내미는 게 잘한 거야. 왜? K-pop 뒤에는 뭐가 나올까? 사상, 경제, 종교, 과학, 문명의 새로운 빛이 안 나올까? ‘워낭소리’는 1억으로 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인데 20살짜리 아이가 소가 우는 걸 보고 따라 울어. 그건 뭘까? 그 눈물의 근거와 감수성의 원인은 뭐야. 내가 워낭소리라는 논문을 쓸 때 드디어 아이젠시타인의 몽타주가 깨졌다고 썼어. 정반합으로 조직된 화면이 아니란 말이야. 애들이 일진이다 왕따다 폭력이다 그러는데 아이들은 자기들도 몰라. 자기들 감수성이 왜 그렇게 변하는지. 아이들에게는 감수성이 중요해. 회초리가 아니고. 폭력이니 일진이니 왕따니 전부가 결국 내가 보기에는 개벽정세라고. 그게 그냥 우연이 아니야.
우리 역사에는 움직이면서도 정체된 현상이 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는 19세기 미학자가 쓴 책에 보면 강물이 어둑어둑할 때 문득 하얀 물빛이 반짝하고 빛난다고. 흰 물결, 흰 그늘이지. 우리 역사는 그거하고 연관이 되는 거야. 융의 정신분석에 나오는 그림자 분석과는 다른 거야.  박완규가 평택출신이라며? 그 친구 노래가 거칠고 아주 드라이하면서도 슬퍼. 그게 ‘시김새’야. ‘흰 그늘’. 한자로는 백암(白闇), 민세가 얘기한 슬픔과 희망의 동시표현이라는 말과 같은 거지.

■ 여성중심의 이원집정
“여성들의 소비 판단력
생산체제에 응용했을 때
엄청난 변혁이 오게 되지”

루돌프 슈타이너(녹색운동의 창시자, 신비주의자)는 우리나라가 이스라엘 같은 성배의 민족이라고 하지. 여자가 정권을 잡는 것을 난 평소에는 굉장히 강조해온 바지만 여성중심의 권력이동, 즉 음개벽(陰開闢)에 수천 년간 지배해왔던 남성들의 지혜가 필요한 게 아닐까?
‘정역’에 보면 개벽 기에 제 2중 구조가 있어. 십오일언(十五 一言)과 십일일언(十一 一言)인데 십오일언은 ‘무위존공(戊位尊空)’이라고 해서 어른들, 즉 정치인이나 지도자급은 뒤로 물러나 보조하고 여자들이나 못난이들, 노동자들, 농민들이 나서라 하는 거야. 그리고 직접민주주의, 그걸 십일일언이라고 해. 불교의 화엄경이자 우주의 최종적 결론은 10인데 정역에서는 십무극(十無極)하고 일태극(一太極), 즉 음양을 융합시키는 것을 자꾸 강조하지. 개벽 기에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야.
오늘날은 문화자본주의야. 그건 문화를 매개로 하는 작품 판매행위가 아니라 칸트의 판단력비판 자체를 문화자본주의라 그래. 유타 베름케가 쓴 요즘 나온 책 ‘미학과 경제’에 보면 오늘날 시장 소비판단력에서 여자들을 당할 자는 아무도 없어. 팔여사율(八呂四律)을 중국에서는 율려(律呂)라고 그러지. 남자 중심의 여자지배야. 여성들의 소비판단력이 생산체제에 응용했을 때는 엄청난 생산체제의 변혁이 오게 되지. 그러니까 여자는 현대경제에서 절대 소외되어서는 안 되고 앞으로 현대경제는 여자들의 소비판단을 중심으로 소비패턴 그 자체 안에 들어있는 새로운 생산시스템의 가능성을 찾아가야지. 소비판단은 여자들의 장점이야. 일종의 자기 식구들을 위한 생활적인 이해관계까지 반영되거든. 이런 현상들을 근대학자 중에 조금이라도 냄새 맡은 것이 민세야.

 
■ 신간회 연구와 평택
“경제 안에 정치가 들어가서
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건 민세도 지적한 사항이지”

신간회는 3~4년 동안에 전국에 지부가 140~180개가 생겼는데 거기에는 공산당, 좌우익, 중간파 다 들어가 있지. 민세사상은 언론에서 지식인들로 결국은 신간회로 구체화되는데 거기엔 애들과 여자들이 많았어. 민세부터 시작해야 해. 종합점, 입고출신(入古出新)에는 중간에 종합점이 필요한 거야. 그게 옛날이든 가까운 근대든지 간에.
민세의 주장이 뭐야. 중도(中道)지. 그런데 그건 시중(時中)이야. 이때는 왼쪽으로, 이때는 오른쪽으로, 이때는 가운데로. 그렇게 본다면 中은 근본적인 이유에서 가운데가 아닌 셈이지. 이게 내가 어렵다고 얘기하는 민세사상이야. 민세는 르네상스 하고 연결되는데 우리나라가 안 좋은 악조건 속에서의 미래의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사람이 바로 민세거든. 르네상스가 바로 입고출신(入古出新)이야. 우리는 과거를 전부 새로 새겨야 해. 그런데서 보면 민세의 정신은 기가 막힌 거야. 가장 중요한 게 경제잖아. 경제 안에 정치가 들어가서 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건 민세도 지적한 사항이지. 앞으로 평택은 신간회 연구를 해야 해. 내말 흘려듣지 말고.

● 민세(民世)는 누구?
민세 안재홍(安在鴻·1891~1965) 선생은 일제강점기 국내의 대표적인 민족운동가로 9차례에 걸쳐 7년 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일제하 최대 민족운동단체였던 신간회 총무간사를 역임했으며 광복 후에는 미군정 민정장관, 제2대 국회의원으로 민족 발전과 사회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또 조선일보 주필, 발행인, 사장을 역임하며 사설과 시평 등을 통해 일제를 비판하고 민족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 시인 김지하는?
1941년 생. 본명은 김영일. 서울대 미학과 졸업. 1964년 대일 굴욕 외교반대투쟁에 가담해 첫 투옥이후 1980년 출옥 때까지 ‘오적 필화사건’ 등을 계기로 투옥과 재 투옥을 거듭하며 8여년을 영어(囹圄)의 세월로 보냄.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판소리 가락에 실어 통렬하게 비판한 장시 <오적>을 비롯해 <빈산> <밤 나라>등의 서정시가 있으며 시집으로는 <타는 목마름으로> <애린 1·2>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별 밭을 우러르며> 등과 생명사상을 설파한 산문선집 <생명> 등이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김 지 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타는 목마름으로 : 1970년대인 유신정권 때는 민주주의를 꿈꾸고 주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야 했다. 시인은 남몰래 쓴 이 감격의 이름을 거울로 삼아 무수한 이미지를 건져 올린다. 이렇게 남몰래 숨죽여 흐느끼며, 타는 목마름으로 쓴 그의 시가 오늘날에도 우리의 가슴을 친다면 그것은 시인의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붓글씨:청파 김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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