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부나 지자체의 잘못을 비판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말들을
유언비어로 치부하는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평택의 학부모다.
제발이지 이런 사태에 관한 한
정부나 지자체의 ‘과잉대응’을
달게 받고 싶은 학부모이다

 

▲ 김혜련 사무국장
평택안성흥사단

6월 8일 현재, 요즘 일상의 모든 대화가 중동호흡기질환인 메르스이다. 아침이면 하루 일과를 메르스 관련기사를 검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불안한 맘으로 뉴스를 접한다. 오늘은 또 몇 명이 늘었을까? 진정되었거나 환자가 늘지 않았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정부나 지역에서 행하는 태도에 어떤 믿음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아침은 87명으로 늘었고, 10대는 괜찮다더니 고등학생 감염자도 발생했다. 

지난주에는 아이들 학교에 전화하기 바빴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물었다. 전화를 받는 사람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교육청은 물론 학교의 입장에서도 결정된 것이 없어, 열이 나거나 이상증후가 있다든지, 격리 조치된 사람을 접촉하지 않았으면 학교에 나와야한다는 이야기다.

6월 4일 전국모의고사를 앞두고 전국의 고등학교 중 어느 한 곳도 휴교 조치를 한 곳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만 그렇게 결정내릴 수 없고, 또 모의고사를 보지 않으면 더 큰 항의전화를 받지 않겠느냐며 되레 화를 낸다. 

항의 전화를 이틀째 하고 있으면서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제 또다시 개인의 문제가 되어 고민한다. 고3인 아이가 결석 조치가 되더라도 학교에 보내지 말 것인가?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감염자 수가 늘어났다는 소식 말고는 감염경로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이 시작됐다고 알고 있다 보니, 불안에 떨며 하루 종일 여기저기 정보를 수집하느라 다들 바쁘다. 발표된 추가 인원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 격리 조치는 잘 되는지, 지원은 제대로 받는지 등등 오전이면 이미 대부분의 관련내용을 수집해 주변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평택은 소위 한 다리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작은 곳이다. ‘평택안성맘’ 인터넷카페 사이트가 어느 정보보다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어 시민사회단체들이 6월 2일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건복지부장관과 평택시장은 현장 실태 파악에 나서고, 민관합동비상대책본부를 구성하여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것을, 메르스 사망자가 속한 협진여객 관련자 모두에 대한 검진조치를 실시하라는 내용 등이었다. 

평택시장이 누구인가? 평택시민은 물론 전 국민이 감염지가 평택임을 다 알고 있음에도, 공식적으로 평택지역을 밝힐 수 없으며 예정된 시민체육대회가 차질을 빚을까 걱정했던 인물이 시장이다. 평택 감염사실을 밝히게 되면 지역경제가 흔들리고 지역이 고립되므로, 정부의 정보 통제에 편승해 사실 공유에 대해서도 경고를 날리던 사람이다. 심지어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도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주므로 취소해달라고 여기저기 압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결국 평택시장은 자리를 비워 만날 수 없었다. 메르스가 확산되어 사망자가 늘어나고, 시민들은 갈팡질팡 위기감 속에 대책을 요구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위의 눈치만 살피는데 급급해 보인다, 이는 마치 대책도 없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움직이면 위험하니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대기하라는 세월호 선장의 판박이였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정부나 지자체의 조치를 기다리고 믿기보다는 개인의 정보를 신뢰하고 관에 어떤 것도 의존하지 않고 개인이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화가 나 미치겠지만 ‘늘 그렇지 뭐’ 하며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다만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더 많은 사람들의 피해가 최소화 되도록, 그나마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최소한의 양심과 책임감을 지금이라도 회복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온 나라가 메르스로 난리다. 메르스 대처로 고생한 병원과 의료진, 자격 격리자들의 피해는 누가 책임지나? 미군이 오산기지로 들여온 탄저균은 어떻게 됐나?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이 당당하게 잘못한 것을 밝히고 바로잡고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부는 국민 불신을 자초하고 문제를 더 키우기 마련이다. 나는 정부나 지자체의 잘못을 비판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말들을 유언비어로 치부하는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평택의 학부모이다. 제발이지 이런 사태에 관한 한 정부나 지자체의 ‘과잉대응’을 달게 받고 싶은 학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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