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를 구해줄 것인가?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하늘도 우리를 버린다’
그러니 건강을 지켜야 할
시민의 권리는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할 것입니다

 

 
중동 호흡기병 ‘메르스’, ‘탄저균’, ‘사드’ 미사일.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고 평택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가 평택의 민심을 바짝바짝 타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얘, 아범아! 꼭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게냐? 버스를 타고 가지 그러냐… 너야 아무렇지도 않다지만 가족을 생각해서 기차 탈 생각은 말거라. 기차가 서울 가는 길에 평택을 들리는데 거기서 ‘메르스’에 걸린 사람이 안 탄다고 누가 보장할 게냐! 그 병균을 가족들에게 옮겨서 무슨 변을 당하려고 그러는 게냐…!’

다른 고장에 사는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가는 일조차 께름칙하게 생각하리만치 ‘평택은 유령도시가 되었다’고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평택은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안 그래도 경제가 안 좋은 시절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를 막론하고 한산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다른 도시와 달리 평택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만 하나같이 하얀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이 사람이 혹시 ‘메르스’ 환자인가! 해서는 옆자리에 앉는 승객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됩니다.

난데없는 ‘메르스’, ‘사드’ 미사일, 탄저균이 친환경 자연도시 평택을 ‘사면초가’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꼼짝없이 궁지에 몰려 목숨이 경각에 이른 ‘사면초가四面楚歌’ 그 유래는 이렇습니다.

중국 진秦나라가 멸망한 후 초패왕 항우와 한나라 왕 유방劉邦이 천하를 다투면서 5년 동안 싸움을 했다. 지칠 대로 지친 쌍방은 싸운 지 4년째 되던 해의 가을, 항우가 인질로 잡고 있던 유방의 가족들을 돌려보내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휴전협정을 맺었다.

항우는 약속대로 동쪽으로 철수하기 시작했지만 유방은 장량과 진평의 계책에 따라 협정을 위반하고 항우를 공격했다. 항우는 해하垓下에 진을 치고 한군과 대치했다. 이때 항우의 군사는 10만, 한나라 군사는 약 60만 대군이었는데 한나라 군대는 항우의 군대를 여러 겹으로 에워쌌다. 항우의 군대는 한군에게 물샐틈없이 포위된 데다 군량마저 떨어져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한나라 군사들이 펼친 심리전이었다. 항우는 초나라 군사들이 한나라 군사에게 모두 항복한 줄 알고 그만 낙담하고 말았다. 항우는 크게 놀라며 말했다.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이리 많단 말인가?”

항우는 이 싸움에서 대패했고 계속 쫓기다가 오강烏江에 이르러 자살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심리전을 사용했던 유방이나 한신 그리고 이에 당한 초패왕 항우와 그의 부하들은 모두 남방의 초나라 출신이다. 이 초나라를 중심으로 한 남방의 노래를 초가楚歌라고 하는데 감상적이고 애잔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구슬프기 짝이 없다.

부모처자를 두고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전쟁과 향수에 시달려 온 항우의 병사들 중 구슬프고 애잔한 고향의 가락을 듣고 탈영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그날 밤, 항우는 오추마에 올라 자제병 800명을 데리고 한나라 군영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뚫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날이 밝은 후에야 항우가 도망쳤음을 안 한나라군은 기병 6000명을 보내어 추격했다. 항우가 회하에 이르렀을 때 수하에 남은 장병은 겨우 10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추격해 온 유방의 군대가 또다시 포위해 오자, 항우는 수하 장병들에게 말했다.

“내가 군사를 일으킨 지 8년이다. 그 동안 큰 싸움을 70여 차례 치렀으나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천하의 패왕이 되었는데 오늘 이렇게 놈들에게 포위당하다니, 이건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내가 그들한테 진 것이 아니다”

항우는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오추마를 정장에게 넘겨주었다. 수하 장병들도 모두 말에서 내렸다.

손에 단도를 틀어쥔 그들은 추격해 온 한나라 병사들과 육박전을 벌였다. 몇 백이 넘는 한나라군이 쓰러지는 와중에 항우의 군사들도 하나둘씩 쓰러졌다. 가혹한 싸움에서 열 군데가 넘는 상처를 입은 항우는 오강 기슭에서 목을 베어 자살했다.

‘사면초가’ 유래를 자세히 읽어보면 2000여년 전 상황이나 지금 평택상황이 별반 다를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사는 모습이란 그 때나 지금이나 다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입니다. 게다가 평택지역 정치인들이란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백성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나 정당政黨의 눈치를 보느라 평택지역이 다 뒤집어져도 찍소리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평택에서 발단이 됐다고는 하나 해당 병원의 책임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정작 ‘메르스’ 공포는 보건당국이 종합병원의 ‘메르스’ 환자를 감추는 듯한 ‘봐주기’ 식 은폐로 사상초유의 전염병 광란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느 날 갑자기 정부 보건당국에서는 평택지역 병원이 마치 ‘메르스’를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하고 있다가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된 것 인양 평택을 죄인처럼 몰아 부치며 책임전가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하늘도 우리를 버린다’ 그러니 건강을 지켜야 할 시민의 권리는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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