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0월 11~13일

 

   
 

 

진위청년회 혁신키로 하고 3일간 공연 
매일 만원사례, 지역 유지 후원금 답지 

 “京畿道 振威靑年會에서는 今般 革新紀念으로 素人劇을 去 十一日부터 三日間 平澤里에서 擧行하였던 바, 每夜의 觀衆은 場內에 立錐餘地도 없이 盛況을 이루어 入場料 金百餘圓에 達하며, 同情金도 四百餘圓이 遝至하여 同會에 將來는 매우 望有하다 하며, 同情人士의 芳名과 金額은 左記와 如하다고 하더라”(동아일보, 1926년 10월 17일자)

소인극(素人劇)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초 사회계몽적 성격으로 전개됐는데 그 중심에는 계몽운동 사회단체, 청년단체들과 동우회·갈돕회·송경학우회·형설회 등 학생 순회극단들이 있었다. ‘소인’(素人)은 본래 ‘아마추어’의 뜻을 지닌 일본어다. 소인극은 말 그대로 아마추어 즉 학생·직장인·노동자·농민·청년 등 연극이 직업이 아닌 사람들이 비전문적으로 하는 연극을 말한다.

이러한 소인극은 관련 단체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널리 알리거나 운영 자금을 확보하고자 할 때 주로 공연했다. 이외에도 수해나 한해 등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구제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진위청년회도 종종 소인극을 공연한 바 있는데 1926년 10월 11일부터 3일간 소인극을 공연했다. 이때 공연한 소인극은 유명무실한 진위청년회의 혁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진위청년회는 1917년 진위구락부로 창립됐으며 1922년 진위청년회로 변경됐다. 그렇지만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지는 못했다. 이에 청년회는 1926년 10월 조직을 혁신하기로 하는 한편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소인극을 공연하기로 한 것이다.

소인극은 이해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평택리 진위청년회관에서 공연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연마다 관중은 만원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3일 동안 공연에 입장료 수입이 100 원에 달했고 동정금도 403원이 답지했다. 당시 평택의 유지들은 이 소인극 공연을 관람하고 동정금을 후원했는데 금액은 다음과 같다.

이성렬 15원, 이민두 이명환 이학준 이홍식 윤구영 이종훈 안종철 이성의 유창근 각 10원, 권태동 성주한 박병석 박상오 윤응구 전희경 김진규 이기종 장윤식 김홍식 이강석 김화식 신찬우 김호길 이금란 윤계화 김중배 김화선 이하선 박원용 이용옥 신순호 박세보 한규동 각 5원, 정인창 외 23인 각 3원, 김현준 외 29인 각 2원, 최영수 외 55인 각 1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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