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소재로 화폭에 담은 ‘고향의 향수’

고향 유타주 산골 돌과 바위 그리며 향수 달래
송탄국제교류센터서 그림·영어회화 자원봉사

▲ 한국을 방문한 시부모님과 함께한 에린 판스워스 가족
에린 판스워스(Erin D. B. Farnsworth)는 군무원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미국인이다. 훤칠한 키의 그녀는 주부이기에 앞서 화가로서의 삶에 충실한 예술인이기도 하다.
2001년 대학시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20여 차례나 개인전과 그룹전을 할 만큼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해왔던 그녀는 2010년에는 남편이 일본 아오모리현에 발령을 받자 그곳에 머물며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2011년 8월 남편이 송탄 미 공군 K-55부대에 가정의학전문의로 발령받아 한국에 온 이후에도 그녀의 왕성한 창작열은 식지 않아 지난 4월 21일부터 송탄국제교류센터 로비에서 수채화 그림 ‘돌 그림전’(Arranged Stones)으로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전시를 마친 작품들은 5월 12일 진위면의 한 농장 갤러리로 장소를 옮겨 전시를 하고 있다.
버섯을 재배하는 농장주 박순애 씨가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갤러리를 만들었는데 지역 주민들이 출품한 도자기 공예전시회와 함께 에린의 돌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국적과 언어는 다르지만 자연의 일부로서 한국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돌 그림에는 고향의 향수와 원초적인 아름다움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돌 그림전 시리즈는 길을 가다가 주워온 매혹적인 돌멩이들에게서 얻은 영감을 통해 나온 작품입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채색하는 대신 소박한 실내장식과 대비시켜서 돌을 보여주고 싶었죠. 돌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본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구성하고 변화시킨 돌은 그림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주체입니다. 물감을 사용해 수채화로 돌멩이를 묘사한 것은 돌의 밝은 면과 반투명한 성격을 띤 자연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죠”
에린이 돌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고향의 영향을 받아서다. 그녀가 나고 자란 미국 중서부 유타주 산골은 눈에 보이는 것이 바위요 발에 차이는 것이 돌멩이였다. 그러나 정작 고향에 있을 때는 그 흔한 돌을 그림의 소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유타주 브리검영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물화를 그리는데 집중했다고 한다.
2001년 학부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미국 동부의 워싱턴으로 이사해 조지워싱턴대학교(GWU) 석사과정에 들어간 그는 고향의 돌멩이나 바위투성이 산들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을 앓았고 비로소 고향의 풍경을 상기시켜 주는 예쁜 돌멩이들을 수집해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그림 소재를 구하기 위해 투박한 돌멩이부터 부드러운 조약돌까지 가리지 않고 모았습니다. 윤이 나게 가공했거나 값진 보석이 박힌 돌은 주머니를 털어 사곤 했죠”
그녀의 작품에는 돌멩이 그 자체의 자연스런 모습부터 인간의 손길에 의해 부서지고 연장으로 깎여지거나 연마되어져 윤을 내며 장식용으로 판매돼 진열장에 전시된 돌멩이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다. 하얀 배경의 화폭에 다른 실내장식물과 돌멩이를 배열하기도 하고 나뭇잎과 풀 같이 유기체적인 요소들과도 대비시켜 보임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것이 원래 있었던 원초적인 장소를 일깨우며 메마른 감성을 자극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에린의 예술가적 기질은 그의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았다.
“저의 친정 부모님이 화가이시고 저의 친지들 가운데서도 예술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묘사하고 채색하는 법, 조각과 도자기 빚는 법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11살 무렵 방학 때 어머니께서 저에게 정확하게 얼굴의 균형을 잡아 묘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영향으로 저는 예술적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화가의 길을 걷게 됐죠”
그녀는 그런 자신의 재능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지역사회를 위해 활발하게 나누고 있다. 미군기지 안에서 그림을 가르치기도 하고 송탄국제교류센터에서 내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그림과 영어회화 교사로도 봉사한다. 뉴욕과 일본에서 작품을 보고 반해 한국인 권경엽, 문범 화가를 존경한다는 그녀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지역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런 그녀는 또 한 번의 변화를 앞두고 있다. 남편이 독일로 발령을 받아 올 여름 한국을 떠나게 된 것.
“한국은 참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한국을 떠나게 돼 무척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한국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며 애써 아쉬움을 달랜다. 미국 유타주는 모르몬교의 성지로도 유명한 곳으로 그녀 역시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다.
최근 평택을 방문한 그녀의 시아버지 리처드 판스워스(62) 씨는 청년시절이었던 1969년부터 3년간, 또 2004년부터 3년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에 와서 선교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한국을 떠난 지 6년 만에 왔어요. 저는 한국 음식을 참 좋아해요. 한국을 한 번 다녀간 외국인들은 다들 자기 나라에 가면 한국 홍보대사가 됩니다”
유타에서 소아과 의사로 활동하면서 아들 데이비드도 의사의 길로 이끈 리처드 씨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한국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다문화가족이란?
우리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 북한이탈주민(새터민), 외국인거주자 및 그들의 자녀들을 비차별적으로 부르는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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