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단순한 음식이 좋아진다.
간단한 방법으로 조리하거나
재료자체를 그냥 먹는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있다.
어디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나 좀 들어볼까 하며
기웃거리는 것도 많이 줄었다

 

▲ 안이리
자유기고가
주체가 생략 된 차려놓은 밥상을 생각하면 괜히 뿌듯하다. 누가 차렸는가. 누가 먹을 것인가. 문득 몇 년 전 영화배우 황정민의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만 들었다는 훈훈한 수상소감이 생각난다. 수상소감이 훈훈했던 것은 밥상을 차려놓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노고를 끄집어내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밥상은 임금님 수라상도 아니고 7첩, 9첩 반상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밥상은 남이 차려놓은 밥상이다. 이런 얄미운 속내마저 ‘그럴 수 있었어’라며 나는 내 어깨를 두드린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어미라는 본능으로, 후에는 양가의 늙은 노인들을 위해 무던히 밥상을 차렸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만 들면 그렇게 좋더니 점점 그런 마음이 사그라진다는 것이다. 내가 입이 좀 짧은 편이기는 하다. 맛집을 찾는 미식가는 아니지만 한 끼 때우는 맛을 좋아했었다. 맛집의 감흥도 이제는 크게 없다. 서술하다보니 왠지 인생 다 산 사람 같은 느낌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감흥보다는 다른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여름밥상 차리기는 쉽다. 텃밭에 채마를 입맛대로 뜯거나 따면 그만이다. 요즘은 TV 버튼만 누르면 요리사가 나와 요리를 한다. 몸에 좋다는 것도 많고 요리방법도 다양하다. 또한 너무 많이 먹었다고 다이어트나 건강관련 프로도 많다. 간혹 나도 따라 해보기도 한다. 맛집 음식이 크게 감흥을 주지 않듯 과정이 요란한 음식이 입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았다.

점점 단순한 음식이 좋아진다. 간단한 방법으로 조리하거나 재료 자체를 그냥 먹는다. 보리밥 띄워 직접 담근 고추장에 찍어먹는 정도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있다. 어디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나 좀 들어볼까 하며 기웃거리는 것도 많이 줄었다. 이런 가벼운 식사에 함께 할 이가 있으면 기꺼이 밥상을 차려내겠다.

그러나 기꺼이 밥상을 차려내겠다는 내 마음을 무색하게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한여름 밤에 주둥이만 들이미는 것들이다. 제 입맛에 맞는 것만 모조리 먹는 편식까지 있다. 나는 저것들을 위해 상을 차리지 않았다. 초대하지 않았지만 너도 좀 먹어라 하기에는 녀석들이 너무 얄밉다. 초대는커녕 빙 둘러 금줄을 쳐 놓았는데 어디로 들어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고라니는 바보가 아니었다.

뒷산이나 산책로나 마을 어귀에서 고라니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보면 참 순한 눈망울을 가지고 있다. 그런 순한 눈망울을 가지고 뻔뻔스런 일을 일삼다니,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남이 차린 밥상에 주둥이만 들이대는 고라니가 싫다. 하물며 다 차리지도 않은 밥상인데 잘 자라고 있는 콩잎을 알뜰하게도 뜯어 먹었다. 나는 삼박사일 속이 상했다.

노모가 돌아가시고 이년을 메주를 쑤지 못했다. 올해는 콩 농사를 잘 지어서 처음으로 메주 쑤기를 시도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다른 것은 그냥 두고 콩잎만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올 여름에는 순도 쳐줄 겸 콩잎장아찌에도 도전하려 했는데 순 치기는커녕 콩 열리기도 힘들게 생겼다.

나는 차려놓은 밥상에 주둥이만 들이대는 얄미운 고라니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다. 그런 피해를 입은 사람이 한 둘은 아닐 것이다. 친구는 좋은 방법이 있다며 어느 경험자의 이야기를 했다. 내게 권유한 방법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양파 망에 넣어 몇 군데 매달아 놓으란다. 그러면 고라니가 사람의 머리카락 냄새를 용케 알아보고 접근을 하지 않는단다. 머리카락 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용실에서는 쌓여 있는 것이 사람 머리카락 아니겠는가.

그런 처방이라도 해볼까 하는데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역사 속 전투의 참수한 적장의 머리가 떠오르니 고라니가 적인가. 참수한 고라니 머리도 아니고. 하기야 아침 일찍 눈비비고 밭에 나갔는데 밤사이 깨끗하게 콩잎을 먹어 치운 첫날 마음은 고라니와 전쟁이라도 치루고 싶은 마음이었다. 요 며칠은 고라니 출몰이 뜸하다. 날이 뜨겁고 비까지 오니 연한 새잎이 다시 나오고 있는데 또 고라니가 오면 낭패다. 정말 머리카락이라도 걸어야하나.

서리태는 좀 늦게 심어야 한다. 메주콩잎이 파랗게 나올 즈음 뿌린 서리태는 비둘기 밥상이 되었다. 애초부터 구멍에 콩알을 그대로 심을 일이 아니었다. 집에서 모종을 키우는 판에 싹을 틔워 어느 정도 자란 다음 밭에 옮겨 심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귀찮아 쉬운 방법을 택한 결과다.

농사란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참으로 미욱한 초보농부다. 내년에는 저것들에게 후한 밥상을 내놓지 않는 인색한 농부가 되기로 한다.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눈독 들이는 일은 이제 그만 집어치워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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