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8월 24일

 

한 달 동안 비 오지 않아 민심 흉흉
비전리 봉화대에 군수 등 유지 모여

 
“京畿道 振威地方에는 今春 來로 洽足한 비가 오지 아니하여 七月 下旬頃까지 僅僅히 移秧하였다는데, 一個月 前부터 甚酷한 旱魃이 繼續하여 晩種은 至今 降雨가 된다 하더라도 收穫의 餘望이 無할뿐더러 若干의 早種도 各面에 ○裂이 生하고 陸稻 豆太 等도 悽慘하게 全滅狀態에 至함으로 一般民心은 極度로 洶洶하다는데, 當地 碑前里 後 烽火臺에서 지난 二十四日 午後 八時에 郡守 以下 有志諸氏가 參集하여 祈雨祭를 擧行하였다더라”(동아일보, 1928년 8월 28일자)

요즘 비가 내리지 않아 적지 않은 걱정이 든다. 조그마한 땅에 몇 가지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마음이 타들어가고 마냥 하늘만 쳐다보기만 한다. 흔히 장마철에 비가 오지 않으면 가뭄이 들었다고 하고 장마철인데 비가 오지 않으면 마른장마라고 한다.

고대사회에는 극심한 가뭄이 들면 왕이 책임을 지고 양위를 하는 사례도 없지 않았고 기우제를 종종 지냈다. 최근에도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자 기우제를 지내는 지역도 있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기우제가 가당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평택에서도 1928년 기우제를 지낸 바 있다.

1928년은 올해처럼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가뭄이 든 지역에는 파종을 하지 못해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평택도 봄부터 비가 제대로 오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그야말로 한발(旱魃)이었다. 7월 하순까지는 가까스로 모내기를 했지만 8월 들어서는 전혀 비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8월 하순에 이르러 비가 온다고 하더라도 파종할 할 여유가 없었다. 일찍 씨를 뿌렸던 밭벼나 콩·팥도 전멸상태로 말라버렸다. 이로 인해 민심은 흉흉해 갈수록 각박해져갔다.

당시 쌀로 유명한 평택은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으면 지역경제가 그야말로 황폐화될 지경이었다. 마냥 비가 오기만 기다리기보다는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내기로 했다. 8월 24일 오후 8시 병남면 비전리에 있는 봉화대에서 진위군수를 비롯해 지역 유지들이 모여 기우제를 지내고 간절히 비가 오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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