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지긋지긋해야 할 것은
질 낮은 일자리가 판쳐도
기업의 배만 불리면 된다고
인정해주는 세상입니다.
정말 지겨운 것은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 우선인 세상,
바로 그런 세상입니다

 

▲ 권지영 대표
심리치유센터 와락
저는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와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해고자의 아내들입니다. 그 아내들과 며칠 전 안산에 있는 ‘치유공간 이웃’에 다녀왔습니다.

‘이웃’은 평택에서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을 위한 와락을 만들었던 정혜신 선생님이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상담하고 아픔을 돌보는 치유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입니다. 이웃의 홈페이지 대문은 ‘이웃’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 세월호 유족들이 가다 넘어지면 약 바르고, 허기지면 함께 밥술 뜨고, 지치면 쉬었다 가고, 외로우면 함께 울고, 아이들 얘기하다 함박꽃처럼 웃을 수 있는 곳입니다. 상담실과 늘 따순 밥을 먹을 수 있는 부엌과 마루가 함께 있는 공간… ‘이웃’은 그런 치유적 공기를 품은 곳입니다 -

소고기와 미역을 볶아 쌀뜨물로 폭 끓인 미역국에 팥·콩·찹쌀을 불려 지은 찰밥, 반질반질 윤나는 코다리 조림, 노랗게 부쳐낸 호박전, 제철을 맞아 한창 맛 오른 가지나물과 아삭한 오이고추를 된장에 무치고 막 버무린 배추겉절이와 오이소박이까지 40명이 함께 먹을 점심을 준비해서 승합차 한가득 싣고 안산에 도착하니 딱 점심밥 때였습니다.

음식을 내리고 가벼운 눈인사만 나눈 후 점심상을 차렸습니다. 뜨개교실이 있던 날이라 한창 뜨개질을 하고 있던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밤만 되면 별이 된 아이 생각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는 엄마들이 뜨개질을 천연진통제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입니다.

와락에서 차리는 밥상은 좀 거창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저희는 치유밥상이라고 부릅니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식재료여서가 아니라 소박한 재료로 정성껏 차리는 집밥이 주는 치유적 효과를 깊게 믿기 때문입니다. 쌍용차해고자들을 위해 와락을 만들었던 것처럼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만들어진 ‘치유공간 이웃’에서도 와락처럼 매일 치유밥상을 함께 나누며 상담도 하고 긴장으로 굳어진 몸을 마사지하기도 합니다.

그러게요. 세월호 사고가 있은 지 벌써 일 년이 넘게 지나버렸네요. 심심찮게 지겹다 말하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소식이 언론에 보도 될 때 달리는 댓글에서도 흔하게 보게 되는 말들입니다. ‘지겹다’,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거냐’ ‘지긋지긋하다’ ‘이제 그만 좀 할 때도 됐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가 생각하는 궁극의 치유는 일상의 회복입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 다시 그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치유가 아닐까요?

그러나 세월호 유족들과 쌍용차 유족들은 그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을 하더라도 먼저 떠난 가족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으니까요. 누구의 잘못 때문에 생긴 일인지도 모르고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있는데 완전히 잃어버린 아이와, 아빠와 엄마를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일이 어떻게 지겨운 일이 될 수가 있을까요?

지긋지긋하니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혀에서 독을 뱉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요? 전혀 원치 않았는데 이런 상황이 된 것이 가장 진저리쳐지게 싫은 것은 바로 쌍용차해고자들, 세월호 유족들, 바로 그들이라는 것을요. 제발 진상이 소상히 밝혀지고 상황이 해결되어 어떤 매듭이 지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란다는 것을요. 그래서 추모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을요.

사전이 설명하는 ‘지겹다’ 입니다. 우리가 진저리 낼 것은 사람을 함부로 해고하고 7년이 지나도록 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복직을 요구하는 해고자들을 방치하는 사회입니다. 우리가 정말 정나미 떨어져야 할 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 몇 백 명이 사라졌는데도 그 원인을 철저하게 밝혀내는 것에 주저하는 사회입니다.

우리가 진짜 지긋지긋해야 할 것은 정규직 일자리가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사라지고 온통 비정규직·계약직 등의 질 낮은 일자리가 판쳐도 기업의 배만 불리면 된다고 인정해주는 세상입니다. 정말 지겨운 것은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 우선인 세상, 바로 그런 세상입니다.

그래도 지겨운 오늘을 버틸 수 있는 건 평택의 ‘와락’과 안산의 ‘이웃’에 관심과 애정을 보내고 정성을 보태는 우리와 같은 많은 우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그만 지겹도록, 우리가 사는 곳이 매일 새롭고 즐거울 수 있도록 저는 오늘도 와락 치유밥상 장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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