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


 ‘뽐뿌’가 있는 집에서는
고무함지박에다가 찬물을 받아놓고
그 안에다 수박을 담가 차게 했고
우물이 있는 집에서는
군용 PP선으로 만든
장바구니 안에 수박을 넣어서는
두레박줄에 묶어 우물 안에
넣어두기도 했습니다

 

후배 김 선생이 결혼을 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그를 까다로운 사람이라 말하고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를 고약하다고 말을 할 만큼 원리원칙에서 조만치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고지식한 김 선생입니다.

그가 찾아낸 신혼 살림집은 근무하는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월세방이었습니다. 1980년도 한참이나 지난 시절이었지만 여전히 웬만한 학교 선생의 생활터전은 사글세방 이기가 일쑤였습니다.

대개의 경우가 그러하듯 결혼을 했으면 가까운 주변 친구들이라도 불러서 저녁이라도 한 번 먹자고 하련만 대쪽 같은 김 선생에게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삼복더위가 이어지던 여름방학 어느 날,

- 김 선생 계신가?

그가 알려준 대로 집을 찾아 대문을 들어서니 어디 시골 여인숙이나 하숙집처럼 줄줄이 방이 들어찬 마당이 넓고 허름한 슬레이트집이었습니다.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 단칸방 안에는 변변한 가구도 눈에 띄질 않는데 마침 서향西向으로 난 방이라 눈부신 햇살이 툇마루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습니다.

- 김 선생네는 선풍기도 없어?

- 처갓집에서 혼수로 선풍기를 사면 신랑이 바람이 난대나… 뭐래나… 하면서

김 선생은 멋쩍은 웃음을 웃습니다.

-야! 이 사람아,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또 무슨 입산수도하는 사람도 아니고 왜 사서 고생을 하나!

결혼할 때 신부가 신랑에게 해주는 혼수에 신랑구두 품목도 없던 시절이었지요. 신랑에게 구두를 해주면 그 신을 신고 도망을 간대나 어쩐대나…

- 아빠! 우리 냉장고 너무 작아! 수박 한 통도 안 들어가는 게 무슨 냉장고야, 못쓰겠어. 어서 새 거 사! 응!

여름이 시작되고 참외·수박을 먹기 시작하면서 냉장고 안이 비좁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먹을 것을 조금씩 나누어서 사면 될 것을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냉장고가 터지도록 먹을 것을 사가지고 와서 또 냉장고 타령을 합니다. 하긴 언제부턴가 웬만한 집에서는 이미 냉장고를 두 개씩 놓고 씁니다. 거기다가 김치냉장고는 또 따로 있습니다. 그래도 좁습니다. 그런데도 눈에만 띄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사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 냉동실 안에서 몇 년씩 묵은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밑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호랑이가 담배를 먹던 시절, 수채 구멍으로 밥알이 들어가면 ‘천벌’을 받는 알뜰살뜰하던 시절, 동네 구멍가게로 두부를 사러 가면 물이 가득한 뻘건 고무 함지박 안에 들어 있던 두부 한 모를 건져내서 가위로 정갈하게 오려낸 신문지 1/16 한 장에다가 두부를 얹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손바닥 위에다 두부를 얹고는 집으로 성급하게 뛰어오다가 두부를 땅바닥에 떨어뜨려 박살을 내고는 욕을 바가지로 먹던 날들이었습니다. 검정 비닐봉투도 귀한 대접을 받았기에 콩나물을 사도 신문지에 싸주었습니다.

얼마가 지나고서야 하얀 비닐봉투가 나와서 먹다 남은 갖가지 음식물들을 넣어서 보관했지만 그 때까지도 냉장고는 귀했습니다.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집에서는 함석집에서 양철을 두드려서 만든 얼음냉장고를 썼습니다. 그러고는 어름가게에 가서 어름을 한 덩어리 사다가 냉장고 윗칸에 집어넣으면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기에 밥도 덜 쉬고 물김치도 시원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수돗물이 나오기도 했지만 많은 집 마당에는 여전히 몇 십 년을 두고 쓰던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도 있고 ‘뽐뿌’도 있었습니다. ‘뽐뿌’가 있는 집에서는 고무함지박에다가 찬물을 받아놓고 그 안에다 수박을 담가 차게 했고 마당 한 가운데 우물이 있는 집에서는 군용 PP선으로 만든 장바구니 안에다가 수박을 넣어서는 두레박줄에 묶어 우물 안에 넣어두기도 했습니다.

현수아빠는 집에서 놀고 있습니다. 일은 현수엄마가 합니다. 현수엄마는 야쿠르트 배달아줌마입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학교에 가는 현수를 챙기는 일은 현수아빠 몫입니다.

몇 년 전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골목길에서 현수아빠는 뺑소니 사고를 당했습니다. 마침 골목길로 지나가던 행인이 119에 신고해서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자동차에 부딪혀 머리를 다친 현수아빠는 그 뒤부터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침을 먹은 현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에 가는 일과 현수가 학교를 마치면 교문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교실에서 나오는 현수를 태우고 집에 오는 일만큼은 한 치도 어김없이 잘 해냅니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현수는 어김없이 아빠 자가용 자전거로 학교엘 갑니다. 동네 모든 아이들이 현수를 부러워하던 자가용 자전거였지요.

세월이 변했습니다. 변해도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도, 눈이 오지 않는 날에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초등학교 주변에는 학교에 오고 가는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자가용 자동차 탓에 교통체증이 생깁니다. 

앞으로 30년 뒤 평택 모습이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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