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쌀은 먹거리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경건함과
엄숙함을 지닌 생명 그 자체다.
그런 생명과도 같은 우리 쌀이
수입쌀로 인해 홀대 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실로 안타깝다.
생명과도 같은 쌀을 지켜야 한다


   
▲ 이상규 정책실장
평택농민회

봄에 심은 벼에서 이삭이 패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벼꽃을 피우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어느새 수정을 마친 벼는 부끄러운 듯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흙을 향해 고마운 마음 가득 담아 고개를 숙인다. 머지않아 겸손하게 고개 숙인 이삭들은 바람과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햇살을 머금은 생명 가득한 쌀알로 변해 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네 밥상을 풍성하게 책임질 밥 한 공기로 뜨끈한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우리와 마주할 것이다. 이제 입추도 지나 가을이 오는가 보다.

나는 초봄 황량한 들판을 쟁기로 갈아엎으며 올해 농사도 풍년농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지난 20여 년간 농사를 지으며 지난해 처음으로 삼배출 넘는 농사를 지었기에 올해도 작년보다 더 많은 나락을 수확하길 바라며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었다. 참고로 삼배출 농사란 예전 의미와 약간 달라 150평(한마지기) 논에서 쌀이 세 가마 나오는 것을 말한다. 나 같은 소작농이 세 가마의 쌀을 수확하면 한 가마는 지주에게 주고, 한 가마는 비료·농약·농기계 값 등 영농비로 쓰이고 마지막 남은 한 가마가 한 해 농사의 수입이 되는 것이다.

4월 햇살 따뜻한 봄날, 한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며 볍씨를 뿌리리던 날,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한가지이듯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모판에 볍씨를 뿌리며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약 한 달이 지난 후 잘 자란 모를 심던 날, 올해 농사도 잘 되게 해달라고 또다시 마음속으로 빌었다. 다행이도 들판에 심은 벼들이 기나긴 가뭄도 이겨내고 잘 자라 이삭이 패고 고개를 숙이며 황금물결 출렁이는 들녘을 우리에게 선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2015년 대한민국 쌀농사의 현실은 나의 바람과 달리 풍년농사가 되어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쌀 재고가 넘쳐나고 쌀 소비가 줄어 쌀값이 떨어지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가 나서서 5% 저율관세로 밥쌀용 쌀 수입을 결정하고 결국 지난 7월 31일 구매 입찰 결과 전량 낙찰되었다. 올해 10월 말부터 내년 2월 사이 미국산 밥쌀용 쌀 2만 톤과 중국산 밥쌀용 쌀 1만 톤이 수입될 예정이다. 지난해 쌀시장을 관세화로 전면개방하며 의무적으로 들여오는 수입쌀 중 밥쌀용 쌀 수입의무가 사라졌는데도 그리고 국내 쌀 재고가 넘쳐나는데도 정부가 앞장서 수입쌀 의무물량으로 밥쌀용 미국 쌀, 중국 쌀을 수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풍년농사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쌀 재고 증가로 시장에 쌀이 넘쳐나는데 밥쌀용 수입쌀마저 들여온다면 쌀값이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쌀값은 농민 값이라 했다. 쌀값이 떨어지면 쌀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들이 늘어나고 우리 농업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 지난 20년간 농사를 지으며 우리 민족의 생명줄이자 혼인 쌀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외치고 또 외쳐 왔건만 이제는 마지막 남은 우리 농업의 마지막 보루인 쌀농사마저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이제는 국민들도 알아야 한다. 이 땅에 수입쌀이 넘쳐나 우리 농업이 몰락하고 농민들이 쌀농사를 포기하면 농민들만이 죽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 국민들이 살기 힘들어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업을 지키고 우리 쌀을 지키는 것은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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