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피크제로 절감된 돈을
‘고용 확대 기금’으로 묶거나
절감액의 적어도 몇 퍼센트는
반드시 일자리 창출에 써야 한다는
법률을 만드는 등의 대안을
병행해서 만들지 않는다면
이것은 고스란히 기업 이윤만을
보장하는 셈이다

   
 ▲ 김기홍 부소장
평택비정규노동센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노동개혁’, ‘노동시장 선진화’ 등의 요란한 표현을 써가며 여론 몰이가 한창이다. 최근에는 ‘임금 피크제, 청년일자리 확대’라는 펼침막이 시내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이 문제는 우리들 현재의 일자리와 미래에 직결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현안이다. 그러함에도 변변한 공청회나 토론회도 없이 이것이 진실인양 호도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임금 피크제’란 최고점(피크) 급여시점을 정해 놓고, 피크에 도달한 이후에는 그보다 단계적으로 낮아지는 급여를 받는 임금제도를 말한다. 정부-여당은 청년실업 수준이 심각한 만큼, 중·장년층의 급여를 깎아 새 일자리를 만들자며 임금 피크제 도입 사업장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 2003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임금 피크제가 최근 들어 부각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정년 60세 법’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의 대비책으로 2013년, 국회는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정년 60세가 권고사안이 아니라 의무사안이 된 것이다.

정년이 늘어난 만큼 임금비용이 늘어났다며 기업들은 불만이 많아졌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는 돌이킬 수 없으니 ‘정년 60세 법’ 자체를 반대하긴 어려웠다. 대신 재계는 임금 비용을 줄이기 위한 다른 수단도 의무화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반대급부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즉, 연공급에서 성과급 중심체계로의 임금개편, 그리고 임금 피크제가 그것들인 셈이다. 다시 말해 최근 ‘임금 피크제’가 정부-여당의 중심 정책으로 대두되게 된 것은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보다는 기업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올 4월, “임금 피크제 도입으로 발생하는 재원으로 2016~2019년 사이에 18만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라고 공언했다. 아울러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6월, “정년 연장으로 2016~2020년 기업이 추가 부담해야 할 인건비 부담액이 107조 원으로 추정된다. 모든 기업에 임금 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같은 기간에 26조 원이 절감돼 29세 이하 정규직 31만 명을 채용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4~5년 사이에 일자리 18만개, 정규직 31만 명 채용, 재계의 주장대로 임금 피크제 도입으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국회 입법 자문기구인 입법조사처가 지난 6월 29일 이 통계들을 반박하는 자료를 내놓았다.

재계에서 내놓은 통계들은 모두, 모든 노동자가 법대로 60세까지 일할 것을 가정하고 있다고 입법조사처는 지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그보다 일찌감치 일터에서 밀려난다. 전 고용노동부장관인 방하남 등이 2010년 쓴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근로 생애 연구’를 보면, 우리나라 노동자 가운데 정년 이전에 조기 퇴직하는 노동자는 67.1%에 이른다. 남성은 평균 55세, 여성은 평균 51세에 좋건 싫건 직장을 떠난다. ‘18만개’ ‘107조 원’ ‘31만 명’ 등등의 이런 재계의 통계는 결국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인 것이다.

임금 피크제로 절감된 돈을 이를테면 ‘고용 확대 기금’으로 묶거나, 또는 절감액의 적어도 몇 퍼센트는 반드시 일자리 창출에 써야 한다는 법률을 만드는 등의 대안을 병행해서 만들지 않는다면 이것은 고스란히 기업의 이윤만을 보장하는 셈이다.

임금 피크제와 실제 일자리 창출의 연관성을 따지는 연구결과 가운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는 재계의 주장 말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장년층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려고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 선전일 뿐이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