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땅 평택


며칠 전 평택 신한고등학교 전신인
평택동고등학교에서 미술수업을 하던
홍윤기 선생이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자 갑자기 지나간 시간
평택에 자리 잡고
평택을 넉넉한 땅으로 만들던
두 사람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며칠 전 평택 신한고등학교 전신인 평택동고등학교에서 미술수업을 하던 홍윤기 선생이 전화를 했습니다.

멀리 전라북도 무주에서 호도나무 농장을 하고 있고 1970년대 한광학교에서 미술선생을 하다가 수원 영신여고로 전근을 가서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두 눈을 잃은 박승남 선생이 놀러와 함께 아산만에 바람을 쏘이러 왔기에 전화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평택호관광안내소에 들렸는데 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한다며 동요 ‘노을’을 이야기 해주었다는 문화관광해설사를 전화로 바꿔주었습니다.

그런데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바로 배옥희 선생님입니다. 배옥희 선생님은 1980년대 덕동산 교회 우철영 목사님을 중심으로 ‘땡땡거리’ 너머에서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갈 곳이 없던 군문리 아이들을 불러 모아 공부방을 함께 하던 동지입니다.

여러 선생님들이 시간에 따라 과목을 나누어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고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책도 읽고 모여서 놀며 이야기도 나누던 공부방, 여러 가지가 다 넉넉하지 못해 그리 오랜 시간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법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부모님들이 다 일터로 나가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와도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던 군문리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염려하던 벗입니다.

홍윤기 선생님은 지구를 돌고 돌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지내다가 평택시 고덕면에 새로 작업장을 마련해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모두 평택에 뿌리를 둔 그리운 이름이고 반가운 목소리입니다.

홍윤기 선생과 박승남 선생 전화를 받자 갑자기 지나간 시간 평택에 자리 잡고 평택을 넉넉한 땅으로 만들던 두 사람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 첫 번째 ‘하나’는 6.25 때 고아가 되었습니다. 10살 무렵 일입니다. 그래서 졸지에 온 가족을 잃은 ‘하나’는 서울 서대문구 응암동에 있던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습니다.

성실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바른 성품을 가지고 있어 어느 한 군데 나무랄 것이 없는 것을 안 시립아동보호소 원장님의 특별한 배려로 ‘하나’는 고등학교도 나오고 돈이 많이 든다는 미술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군대에 갔다가 제대를 하고는 돌아와 학업을 마치고 평택에 내려와서 미술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이름을 내거나 특별하게 큰 공을 세운 것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전쟁고아에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로 미술선생님이 된 것은 스스로 몸을 일으켜 고난을 극복해 낸 입지전적 인물이라 해도 손색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는 둔포에서 교직에 있던 여 선생님을 만나 결혼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들도 낳았습니다. 그 즈음 많은 선생님들이 평택에서 서울로 자리를 옮겨가던 때 ‘하나’도 운 좋게 서울 학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세상이 다 알아주던 성실파였던 ‘하나’는 어디에 가서든지 누구에게나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교무실 안 다른 선생님들과 친분도 두터웠습니다.

‘하나’의 큰아들이 7살이 되던 해 여름방학, ‘하나’는 동료교사 가족들과 함께 당시만 해도 쉽게 갈 수 없던 강원도 동해안 북방 화진포로 가족여행을 갔습니다.

오랜만에 떠난 여행이었기에 정신없이 잘 노느라 훌쩍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날 아침 여기저기 널린 짐을 꾸리느라 경황이 없는데 갑자기 곁이 허전해서 둘러보니 방금 전까지도 옆에서 모래장난을 하며 놀던 아이가 보이질 않습니다.

- 여보! 애 어디 갔어?

- 못 봤는데요. 어디 갔지?

‘하나’는 불안한 생각에 함께 곁에서 짐을 싸고 있던 동료교사에게 아이를 못 봤냐고 물었지만 모두가 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 하나가 아이가 호수 곁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는 순간 눈이 뒤집혔습니다. 그리고는 호수로 미친 듯이 뛰어들었습니다. 화진포 바다 모래사장과 가까이 이어져 있는 호수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둑이 터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조개잡기에도 좋고 숭어도 많은 놀이터였습니다.

‘하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죽기 살기로 호수 물속에 들어가 미친 듯이 호수 밑바닥을 훑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 당겨보니 이미 숨이 멎은 아이였습니다.

고작 한 시간이나 되었을까? 그 잠간 사이에 아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너무 놀라서 눈물도 나질 않았지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를 안고 모래사장으로 걸어 나오는 그 찰나에 지나간 세월이 눈앞을 스쳐지나갑니다.

쌀알 하나 들어 있지 않은 새카만 꽁보리밥에 반찬이라고는 간장물에 재운 마른 새우가 전부인 밥을 먹으면서도 밤을 새워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던 시립아동보호소 시절이 영화장면 같이 어른거립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낳은 생명이고 어떻게 낳은 자식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데려가시다니! 하늘이시어! 하늘이시어!

하나는 다리가 풀려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어 아이를 모래사장에 누이고는 번연히 숨이 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 입에 입을 대고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 평택에 그냥 눌러 살았더라면 이런 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을

나중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평택… 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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