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건설계획이 발표되자
시민사회단체와 주민들이 반대했다.
CPX훈련장은 평택지역 외국군 주둔의
역사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근대문화유산은
향후 평택시의 현대사, 침략과 전쟁,
분단의 역사를 증명하는 근거다.
그러므로 훼손하면 안 된다

 

 

   
▲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경제도시를 지향하는 평택이지만 대외적 이미지는 군사도시에 가깝다. 평택이 군사도시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1942년 일본 해군시설대가 팽성읍 안정리 일대에 활주로와 보급기지를 건설하면서부터다. 한국전쟁 중에는 팽성읍 안정리와 신장동, 서탄면 적봉리·신야리 일대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개념이 확대되었고, 1999년에는 해군 제2함대사령부의 평택이전이 더해졌으며, 앞으로 있을 용산과 의정부 일대의 미군기지 평택이전까지 마무리되면 군사적 이미지는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군사도시의 이미지는 향후 평택시 발전에 긍정보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져올 공산이 크다. 그것은 흡사 일본 오키나와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관광도시의 이미지와 미군기지가 주둔한 군사도시의 이미지를 함께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도시의 중심에 군사기지가 있어 도시의 역량에 비해 발전이 더뎠던 원주시의 사례는 우리에게 반면교사다. 클락크 미 공군기지가 있었던 필리핀의 클락이란 도시는 미군이 주둔할 때는 기지촌에 불과했지만 미군이 철수한 뒤 미군기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외국군 주둔의 역사만큼이나 평택지역에는 외국군이 남긴 근대문화유산이 많다. 일제 말부터 군사기지가 건설된 팽성읍에는 전시체제기에 건설된 방공호가 3기나 남아 있고 비행기 격납고도 온전히 남아있으며 팽성읍 남산리 CPX훈련장에는 여러 개의 지하벙커가 있다.

일본군 기지건설을 위해 깎아낸 팽성읍 신대리 망해산(돌산)도 근대문화유산에 속한다. 신장동의 미군기지 보급물자 수송철로와 같이 군사적이면서도 친근한 문화유산도 있다. 미군기지촌은 미군들과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한국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업지역이다. 과거 기지촌에서는 원화나 달러 대신 군표가 통용되었고 미군기지에서 반출되는 버터와 치즈·햄과 소시지가 기존의 식료품을 대신하였다. 지금도 미군들을 대상으로 했던 양복점과 마크사·금은방·레스토랑, 그리고 온 국민음식이 되어버린 부대찌개나 미쓰리 햄버거 같은 독특한 음식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초기 기지촌의 가옥들, 증축하는 과정에서 만든 기형적인 건물과 독특한 골목길, 담벼락의 태극기와 성조기 벽화도 기지촌의 역사와 삶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팽성 CPX훈련장은 외국군 주둔과 함께 조성된 대표적 근대군사문화유산이다. 일제의 침략과 지배, 냉전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이 훈련장은 해방 후 미군이 접수한 뒤에는 지난 70여 년 동안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이었고 그로인해 비무장지대처럼 군사용 지하 벙커와 참나무·소나무군락이 밀림을 이루는 자연생태의 보고가 되었다. 분단과 단절의 상징이었던 팽성 CPX훈련장이 몇 년 전 미군기지 평택이전에 따른 반환지로 평택시민들의 품에 돌아왔다.

그런데 최근 평택시가 팽성읍 CPX훈련장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보도에 따르면 평택시는 팽성중로 3-2호선을 만들면서 CPX훈련장을 가로지르는 관통도로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도로건설계획이 발표되자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주민들이 반대를 하였다. 필자도 반대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필자가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CPX훈련장은 평택지역 외국군 주둔의 역사를 말해주는 대표적 근대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근대문화유산은 향후 평택시의 현대사, 침략과 전쟁, 분단의 역사를 증명하는 근거다. 그러므로 훼손하면 안 된다.

팽성 CPX훈련장의 경우에는 아름다운 숲과 군사시설이 공존하고 있어 이것을 활용하여 건강한 숲길을 조성하고, 지하벙커와 같은 군사시설에는 냉전과 분단 극복을 주제로 하는 평화사료관, 외국군 주둔의 역사와 관련된 전시장과 체험학습장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택시는 머뭇거리지 말고 도로건설을 중단해야 한다. 참혹한 전쟁과 분단, 냉전의 공간을 평화와 상생의 공간으로 살려 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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