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부의 아내로 살아가는 ‘남국 여인’

한국 생활 14년, 둘째가라면 서러운 여성 농군
평택시 지원으로 교사 방문, 두 자녀 학습 지도

▲ 어엿한 농장주로 비닐하우스에서 오이를 수확하고 있는 크리스티나 라홈 씨
서탄면 금암리에서 한국 농부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는 필리핀 출신 이민자 크리스티나 라홈(42·Christina C. Lajom) 씨.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썼지만 검게 탄 얼굴과 목이 긴 진흙투성이 장화를 신고 있는 그녀에게서 시골 아낙의 순박함과 밝음이 묻어난다.
“농사, 힘들죠. 하지만 정성들여 가꾸고 나면 열매가 맺혀 수확할 수 있으니까 그럴 때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껴요”
그녀의 남편은 오이를 비롯해 토마토, 대파 등의 비닐하우스 밭작물과 벼농사를 경작하는 대농이다. 농번기를 맞은 요즘 그녀는 농사일로 매일 바쁘게 보내고 있으며, 그가 작업하는 농장 비닐하우스 안에는 탐스러운 오이가 주렁주렁 열리고 있다.

하우스 농사일로 하루를 시작
제 철을 맞은 오이는 상품이 될 만한 것을 제때 따서 출하해야하는 것이 관건, 매일 아침마다 남편과 둘이서 작업을 하지만 농장일은 그들만의 힘으로 감당하기 벅차기만 하다. 그래서 고용노동부에 신청을 해 태국 출신 근로자를 두 명 채용해 함께 힘을 보태고 있다.
“아침에 9시까지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비닐하우스에 나와요. 저 분들은 아침 7시부터 일을 시작하지만 저도 같이 일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일 안 하고 놀 수도 있으니까요”
크리스티나의 말에 어엿한 농장 안주인으로서의 모습이 엿보인다.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태국 근로자들과의 의사소통도 영어를 잘 하는 그녀의 몫.
벌써 한국생활 14년째인 그녀, 이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어엿한 농군이지만 고국 필리핀에서는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수도 마닐라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조그마한 공업도시가 고향인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의 병 구완 하느라 가세가 기울어 낮에는 공장에 출근하고 저녁에는 중·고등학교를 차례로 다니는 등 일찍부터 주경야독을 했다.
“아버지가 20년간 병치레를 하셨어요. 4년 전 60세에 돌아가셨지만, 어머니가 병 수발하신다고 오랫동안 고생 많이 하셨죠”
이제 홀로서기를 하며 한결 어깨가 가벼워진 친정어머니를 뒤늦게나마 초청해 어머니가 다음 달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실 계획이다.
“한국의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지 친정어머니는 모르실거예요. 제가 친정에 전화하면서 비닐하우스 일한다고 말하죠. 그런데 어머니는 하우스가 뭔지 몰라요. 필리핀은 사시사철 더운 날씨니까 하우스가 필요 없거든요”

6남매 중 3남매 한국과 인연
크리스티나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먼저 시집 간 동생 때문이었다. 오산에 살고 있는 동생이 한국에 온 것은 크리스티나보다 6년 더 빠른 20년 전이다. 동생의 권유로 한국에 들어와 2년간 송탄공단에서 일하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에 골인하게 된 것. 
한때 막내 남동생도 한국에 고용허가를 받은 외국인 근로자로 들어와 5년간 산업체에서 일한 적도 있었다고 하니 6남매 중 3남매가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몇 해 전 고용허가기간이 만료돼 귀국한 남동생은 요즘도 관광비자로 드나들며 누나들 집에서 머물다가 돌아가곤 한다.
“필리핀에서는 일할 데가 없어요. 직장에 다녀도 임금이 싸죠. 보통 근로자 월급이 5천 페소 정도예요. 한국 돈으로 12만 원 정도 되는데, 여기서 일하면 100만 원 내지 120만 원 정도 벌 수 있으니까 엄청난 돈이죠”
크리스티나에게 비친 한국의 경제적 상황은 필리핀에 비해 너무 좋은 편이다. 때문에 고국에서 겪어보지 못한 한겨울 추위도 힘든 농사일도 그녀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다 좋아요! 괜찮아요!”라는 간단한 대답으로 만족감을 표시했다.
8살 연상인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얻어 현재 초등학교 3학년과 2학년에 다니고 있는데 남편은 뒤늦게 얻은 행복감에 하루 종일 들판을 쫓아다녀도 피곤한줄 모른다고 한다.
“평택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교사가 방문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저한테도 한글을 가르쳐 줬어요. 뿐만 아니라 한국 요리도 가르쳐 주더군요”
농사일로 항상 바쁜 그녀에게 집까지 찾아와주는 방문 교사는 마냥 고맙기만 하다. 평택시의 지원으로 하는 사업인 덕에 필요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 받고 있어 무척 만족한다고.

다문화 출신 정치인에 기대 커
그녀는 지난 4월 총선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필리핀 동포 이자스민 씨가 당선된데 대해서 기쁨과 함께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앞으로 우리 다문화 가족들을 위해 좋은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어요. 아직 만난 적은 없지만 언제 한 번 국회에 방문하는 기회가 있으면 이자스민 의원을 꼭 만나고 싶어요.”
제2의 고국이 된 한국의 정치와 경제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대한민국 국민 누구 못지않은 크리스티나. 그녀가 꿈꾸는 미래가 순조롭게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다문화가족이란?
우리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 북한이탈주민(새터민), 외국인거주자 및 그들의 자녀들을 비차별적으로 부르는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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