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9월 26일

 

3시간 반 불타, 1만 5000원 손해
일본인 여관 등 8호 전소, 실화 추정

 
“지난 二十六일 오전 一시 二十五분경 경기도 진위군 평택면 평택리(振威郡 平澤面 平澤里) 가납여관(加納旅館) 뒤에서 발화하여 부근 인가 八호를 전소시켰다. 이번 화재는 평택에서 처음 보는 큰 화재로 소방조와 야구서장(野口署長) 이하 경찰서원이 총출동하여 진력한 결과 동 五시에 겨우 진화되었고, 방화 원인에 대하여 혹은 방화나 아닐까 하여 경찰서에서는 이웃 몇몇 사람을 불러다가 방금 취조 중인 바, 손해는 방금 조사 중이며 연소된 집은 다음과 같다더라.(하략)”(동아일보, 1933년 9월 27일자)

여름에 화재나 난다는 것은 매우 특이하다. 그렇다고 전혀 불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늘 부주의하면 언제든지 화재는 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름의 불은 낯설다. 그래서 방화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1933년 9월 26일 새벽 1시 평택면 평택리, 현재의 원평동 일대에 화재가 났다. 그것도 평택에서 처음 보는 대규모의 불이었다. 불이 나자 평택소방조 즉 지금의 소방서 직원뿐만 아니라 평택경찰서의 야마구치 서장을 비롯해 경찰들이 총출동했다.

새벽 1시 25분부터 시작된 불은 오전 5시에 이르러서야 불길이 잡혔다. 3시간 반 동안 화재가 이어진 대규모의 불이었다. 이로 인해 카노여관(加納旅館)을 비롯해 오카무라(岡村), 마루케 운송점, 모리다(森田), 카키우치(垣內), 오노우에자동차부(尾上自動車部), 가마니창고(叺倉庫) 등 8개 건물이 불에 타버렸다. 화재를 진화하는 과정에서 소방수 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화재로 인한 손실은 대략 1만 5000원이었다.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갑자기 난 불이고 대규모였기 때문에 방화(放火)로 추정했다. 이에 경찰서에서는 화재가 난 주변의 사람들을 불러다가 취조를 하는 등 난리를 피웠다. 경찰 조사 결과 왜 불이 났는지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기온이 떨어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자 추위를 느낀 걸인들이 모여 불을 피워 놓고 추위를 피하려다가 실화로 불이 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화재로 당시 평택에 카노여관·마루케 운송점·오노우에자동차부 등 일본인 상점과 오카무라·카키우치·모리다 등 일본인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화재가 난 평택리는 일본인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