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이동진의 평택·사람
이동진의 평택, 사람 77 - 우리들의 여름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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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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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평택이 뭔데?


몇 번을 신청한
아내의 근무지 변경신청도
번번이 탈락되면서
마음고생도 더해갑니다.
그가 강원도로 가면
쉬울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는 왜 평택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을까요?
도대체 평택이 뭔데?

 
   
 

1980년대만 해도 시골길을 가거나 시골 5일장에서 만나던 막걸리 집이거나 객주 집을 인근 사람들이 부르는 말에 ‘쌍과부 집’이란 상호가 적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도 과부였는데 며느리 또한 졸지에 과부가 되고 보니 집안에 돈벌이를 할 남자가 없어 아이들을 기르고 먹고 살아가기 위해 생각다 못해 문을 연 막걸리 집 아니면 친정어머니도 과부로 사는데 또 무슨 놈의 팔자인지 시집 간 딸도 과부가 돼 그래서 대를 이은 과부집이라고 해서 사람들은 ‘영남집’이니 ‘삼거리 집’이니 하는 간판에 쓰여 있는 상호 대신 ‘쌍과부 집’으로 불러야 더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한 입소문을 타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도 인심 좋은 ‘쌍과부 집’을 찾았습니다.

오래전 일입니다. 졸업생이 평택읍 합정리 화실로 찾아왔습니다.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다니다가 친지에게 신랑감을 소개 받았는데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기쁜 날 가운데 하나라는 결혼 소식을 전하러 온 졸업생은 기쁨보다는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홀로 되신 어머니가 행상을 하며 어렵게 어렵게 자기 형제들을 길러준 그 고통스런 삶을 자기도 결혼을 하고나면 혹시 어머니 팔자를 숙명처럼 물려받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지요.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주변에서 보면 우리가 부모에게서 몸으로 받는 유전자처럼 보이지 않는 운명 또한 대를 물리는 기가 막히는 사연을 수없이 많이 듣게 됩니다.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발을 디딘 적이 없는 땅 평택, 무엇이 불러서 평택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부분 평택에 처음 오는 사람들의 공통되어진 느낌은 전혀 낯설지 않고 편안하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평택 땅이 내뿜는 지세地勢이거나 평택이 담고 있는 기氣 탓임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그도 난생처음 와보는 평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는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자동차 기름 냄새입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상관없이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잠을 자다가도 아버지가 방에 들어서는 순간 어김없이 눈이 떠졌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방에 따라 들어온 아버지 옷에 밴 역한 자동차 기름 냄새 때문입니다. 강원도 산골을 오고 가는 버스 운전기사인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고작 두 번이나 집에 들렸습니다.

어떤 때는 한 달에 한 번도 집에 오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속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진학을 위해 강원도 춘천으로 나갈 때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와 함께 명절을 쇤 기억이 없습니다. 아버지와 손잡고 놀러간 기억도 없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가 언제 오시나 해서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지만 나이가 먹으면서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친구네 집처럼 명절이 되어도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앉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명절 때가 되면 아버지는 더 바빴습니다.

그랬기에 커가면서부터는 아예 아버지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다니는 버스회사가 집에서는 오고 갈 수 없게 너무나도 멀리 있었기에 잠시 시간이 나도 아버지는 집에 오지 못하고 회사 숙소에서 잠을 자고는 다시 일을 나가야 했습니다. 설령 시간이 조금 있다고 해도 그 시간에 아버지는 자동차를 손질했습니다.

물론 회사에는 자동차를 고쳐주는 정비사가 있기는 했지만 워낙 오랜 시간 낡은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다 보니 아무리 기술이 뛰어난 정비사라 해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고장 난 곳을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아버지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동차는 곧 아버지 몸과 같았지요.

버스회사에는 전화가 있지만 집에 전화가 없으니 그나마 아버지 목소리마저 들을 수 없어 아버지는 늘 그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을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 소망은 바로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던 절대 가족들과 헤어지지 않고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사는 일이었습니다.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 설령 굶는다 해도 가족과는 떨어지지 않고 매일 매일 끼 때가 되면 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함께 밥을 먹고 밤에는 모두 한 지붕 아래 잠을 자는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가지고 그는 평택에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먼 친척이 중매를 서겠다며 알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끌려 여자를 만나고 보니 결혼상대자는 강원도 학교에서 근무하는 여선생님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일 결혼을 한다면 그럴 경우 여자는 남자가 근무하는 지역으로 학교를 옮기는 일이 가능하고 둘이 함께 벌면 더 빨리 또 더 쉽게 일어설 수 있으리란 생각에 주저 않고 선뜻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꿈이었습니다. 학교 근처 월세 방에서 시작한 결혼 생활은 토요일 밤 늦은 시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가 고작이었습니다.

강원도에서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숨이 턱에 닿도록 평택으로 달려온다 한들 버스를 두세 번 이상 갈아타다 보니 밤중이 돼야 평택엘 도착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하룻밤을 자고나면 또 강원도로 돌아가야 할 걱정부터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도 가족이 함께 살기를 바랐는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요?

그러는 사이 몇 번을 신청한 아내의 근무지 변경신청도 번번이 탈락되면서 마음고생도 더해갑니다. 그런데 그러면 남자인 그가 강원도로 가면 쉬울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는 왜 평택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을까요? 도대체 평택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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