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도시가스 요금을 인하한 것은
수입가격이 내렸으니 당연히
공급가격을 낮춰야 했던 것이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이
가스공사의 방만 경영과
이명박정부 시절 추진했던
‘해외자원개발’ 실패로 누적된 부채를
요금인상으로 국민에게 전가한 것이다

   
 ▲ 김기홍 부소장
평택비정규노동센터

도시가스 요금이 9월 1일부터 4.4% 인상됐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도시가스 요금을 내린 지 불과 4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인상 조치를 한 셈이다. 앞서 정부와 새누리당은 4.29재·보궐 선거를 앞둔 지난 4월 23일 당정협의를 통해 5월 1일부터 도시가스 요금을 평균 10.3% 내리기로 합의하고,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선 바 있다. 현수막이 평택 시내 전역에도 걸려있던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었던 원유철 현 원내대표는 당정협의 직후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도시가스 요금은 4인 가구 평균 연료비의 약 45%를 차지할 정도로 서민 가계의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번 인하 조치로 가계 부담이 많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홍보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안 등을 언급하며 “서민 생활이 많이 어려운데 서민 경제에 주름살이 지지 않도록 이번 인상에 신중한 입장을 당부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지난 4.29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도시가스 요금 10.3% 인하’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새누리당과 원유철 원내대표는 정작 선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가 다시 요금을 인상한 데는 침묵했다. 새누리당이 전형적인 ‘선거용 정책’을 편 셈이다.

가스 수요가 적은 여름철에는 인하하는 시늉을 하고,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을 앞두고 슬그머니 인상했다. 에너지 비용이 올라가면 당장 부담을 느끼는 계층은 모두가 알다시피 가난한 계층과 노인 세대다. 도시 가스 사용하는 것이 아까워서 가스 밸브 자체를 잠가두고 전기장판이나 각종 온열기에 의지하는 세대가 부지기수로 존재한다. 가난한 계층과 노인 세대가 오히려 새누리당과 정부를 더 지지하는 이런 불편한 진실이 당장 해결될 수는 물론 없겠지만 새누리당과 정부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 ‘배반의 정치’를 펴는 현실은 정치 도의가 전혀 아니다.

정부는 가스공사가 가스요금을 올리지 못해 발생한 부채 때문에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해명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중국발 쇼크로 인해 국제유가가 올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 유독 도시가스 요금을 인상할 요인이 생긴 것일까? 천연가스를 수입해 각 지역 도시가스회사에 동일한 도매요금으로 공급하는 한국가스공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천연가스 도매요금은 원료비와 가스공사 공급비용으로 구성된다’며 ‘천연가스 도매요금의 대부분은 원료비’라고 설명하고 있다.

도매요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천연가스 최근 수입가격 추세를 살펴보니 계속 하향세였다.  관세청 홈페이지 무역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온 천연가스 수입가격은 올해 4월 1톤에 평균 605.43달러였지만 5월 493.36달러, 6월 473.31달러, 지난달 7월 457.30달러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천연가스 도매요금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 결정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1월, 3월, 5월 세 차례에 걸쳐 도시가스 요금을 평균 5.9%, 10.1%, 10.3% 각각 인하했다. 지난해 12월 도시가스 요금이 1만원이었다면 5월에는 7590원으로 줄은 셈이다.

천연가스 수입단가는 지난해 9월 1톤에 평균 856.96달러에 달했지만 올해 1월 741.61달러로 떨어진 후 2월 699.92달러를 기록해 700달러 선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석 달 후인 5월에는 400달러대로 추락했다. 즉, 5월에 도시가스 요금을 인하한 것은 새누리당이 서민경제를 위해서 지극 정성으로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 수입가격이 내렸으니 당연히 공급가격을 낮추어야 했던 것이다. 즉 정부와 여당이 생색내기를 한 셈이다. 그럼에도 7월 천연가스 수입단가는 지난해 9월의 53.4%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현재 국내 도시가스 요금은 지난해 연말에 비해 24.1% 떨어졌을 뿐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수치로 본다면 도시가스 요금을 더 내려야 하는 상황인데도 도시가스 요금을 인상했으니 도대체 정치권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이 가스공사의 방만 경영과 이명박정부 시절 추진했던 ‘해외자원개발’ 실패로 누적된 부채를 이번에 요금인상으로 국민에게 전가한 것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이명박정부의 ‘자원 외교’ 방침에 따라 2008년부터 5년간 공격적인 ‘해외 자원 개발’ 투자를 단행했다가, 빚이 급속도로 늘어난 바 있다. 당시 가스공사는 캐나다 혼리버 가스광구와 호주 글래드스톤 액화천연가스(GLNG) 사업 등에 6조 원가량을 투자했으며, 그 결과 2007년 말 8조7000억 원이었던 부채는 2012년 말에 32조3000억 원이 됐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명박정부 시절 장관을 했던 사람들이 공직사임 이후 연금을 스스로 반환했거나 한국가스공사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월급을 깎았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책임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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