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사는 일에 원칙은 없다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운 것만
원칙이고 진리인양 착각하며
불행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원칙은 행복이고 원칙에서 벗어나면
행복에서도 벗어난 것이라는
자기 생각의 울타리 속에 갇힌 채
괴로워하는 사람들

 
찬바람이 불고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한여름 내내 노래를 부르던 풀벌레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어느새 창밖에는 흰 눈이 펄펄 내리고 있습니다.

- 여보, 할멈 눈이 오시는구랴!
- 그러게 말이우…
- 그런데 요사이 베짱이 영감은 어째 통 보이질 않습디다.
- 아! 그렇구만. 내가 며칠 전 마을회관 앞을 지나는데 베짱이 영감이 어디가 아픈지 잔뜩 움츠린 채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 봤는데… 진짜 어디가 아픈가?
- 그러게요. 우리가 지난여름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일을 할 때 베짱이 영감님 노랫가락 덕분에 힘든 줄을 몰랐지 
- 그러구 말구요. 노래를 부르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 아이쿠. 내 정신 좀 보게. 여보, 할멈 어서 빨리 따듯한 옷 몇 벌과 털모자를 찾아보시우. 그리고 창고에서 먹을 음식도 한 보따리 싸고 말이요.
- 알았어요.

창밖에는 여전히 흰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습니다.

- 여보, 영감. 길이 미끄러울 텐데 조심하시우.
- 알았어요. 내 휑하니 다녀오리다.
- 베짱이 이 양반이 제발 아프질 말아야 할텐데…

- 이동진이 다시 쓴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집단의식이 머리에 박히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그래서 아직 채 한글을 익히기도 전부터 우리는 꿀벌 이야기와 개미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듣습니다.
오로지 근면과 성실로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꿀벌이야기, 한여름 따가운 뙤약볕 아래 단 1초도 쉬지 않고 먹이를 찾으러 다니며 일만 하는 개미와 일은 안 하고 매일 시원한 풀밭에서 빈둥거리며 ‘씨르렁 씨르렁’ 노래만 하다가 겨울이 되어서는 먹을 것이 없어 여기저기 구걸을 하러 다니다가 결국 추위에 떨다 죽고 마는 베짱이 이야기를 모르는 아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지요.
그래서 개미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곤충이고 노래만 하는 베짱이는 게으른 해충이라는 생각을 가지게끔 주입식 교육을 반복해서 받습니다.
노래만 부르고 살면 결국 굶어죽고 만다는 예술 모독적인 이야기,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오로지 시키는 대로 한 덩어리가 되어 뼈가 부서지도록 일만 해야 한다는 제국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라난 아이들은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알지 못해 오로지 물질만 쫓으며 방황합니다.

도대체 평택이 뭔데!?

아마도 그에게 있어 평택은 자신이 배우는 과정에서 추구해온 목적과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고 어느 무엇에도 상처받고 싶지 않았던 최후의 보루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그가 운이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워낙이 운명적인 대물림으로 예고된 불행이었을까요?
몇 해가 지나도 그는 평택을 떠나지 않았고 부인도 직장을 옮기지 못해 평택에 발을 들이지 못하다 보니 사람인지라 바랐던 간절했던 기대가 무너지면서 차츰 모든 것이 시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한 집에서 살아야 행복이지 따로 떨어져 사는 것은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결혼을 했음에도 함께 살 지 못하니 바로 불행이다. 왜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하는 불행한 생활만 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생각이나 생활방식은 바꾸려고 노력하지도 않은 채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운 것만 원칙이고 진리인양 착각하며 불행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원칙은 행복이고 원칙에서 벗어나면 행복에서도 벗어난 것이라는 자기 생각의 울타리 속에 갇힌 채 괴로워하는 사람들.
직장을 움직이는 것은 여자 쪽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자유는 자기 자신이 만들어서 스스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손에 쥐어 줄 때라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배운 사람들에게는 행복도 누군가가 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투는 일이 잦아지며 부인이 평택을 찾는 시간은 뜸해지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두 사람은 한 지붕 아래서 살지 못하고 결국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서로 상대방 탓만 했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짚어보질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만이 원칙이라고 믿었던 대가치고는 상처가 너무 컸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원칙은 없을 것이지요. 세상이란 어느 한 목숨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