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최현규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선생이 한광중 2학년 때였습니다.
그리고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만난 최현규 선생은
군 복무 때 만들어 둔
악보를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동요 ‘노을’은 탄생됐습니다.
그 인연에 감사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하거나 들을 때 우리는 옷깃이 옷소매인 줄로 생각해서 길을 오가다가 슬쩍 옷소매가 닿는 것도 ‘전생의 대단한 인연이 있어 옷소매가 닿았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인연인 것이지요.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지역에서 숨을 쉬고 살아간다는 것은 꼭 불교신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큰 인연이라 생각할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잠시 살펴보면 옷깃이란 우리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입고 다니던 조선옷 즉 한복에서 동정을 다는 목에 닿는 부분을 옷깃이라고 했으니 정작 옷깃이 닿았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깊고 깊은 관계라야 가능할 일이니 정말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는데 막중한 역할을 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육군사관학교에 다닐 무렵이었습니다. 어느 날 테임즈 강가에서 산책을 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 함성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물놀이를 하던 어린 학생이 허우적대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주변사람 어느 누구 하나 물속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안타깝게 구경만 하고 서 있는 것을 본 처칠은 그 자리에서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곧 물에 빠져 죽을 어린 학생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영국의 육군 장관에 오른 처칠은 한창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아프리카 전선에 시찰을 갔다가 폐렴에 걸렸습니다. 지금도 폐렴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매우 위험한 질병이지만 그 때는 폐렴에 걸리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바로 이때 영국에서 개발돼 막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던 세계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이 처칠이 누워있던 아프리카로 공수空輸됐고 페니실린 주사를 맞은 처칠은 놀랍게도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니까 처칠은 ‘페니실린’이 생명을 구한 첫 번째 사람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전쟁에 참전해서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던 수많은 병사가 페니실린 덕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이 페니실린을 만드는 푸른곰팡이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윈스턴 처칠이 사관학교 생도시절 살려준 테임즈강에서 헤엄치다 죽을 뻔 했던 그 학생 바로 ‘알렉산더 프레밍’이었습니다.

‘음덕양보’란 말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보이지 않게 남에게 선행을 베풀면 언젠가는 하늘에서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한걸음 나아가 자기 자신은 물론 자자손손 대를 이어 복을 받습니다.

푸른곰팡이로 ‘페니실린’을 만든 프레밍은 그 뒤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자유 우방국의 승리로 이끄는데 막중한 일을 해낸 처칠은 1953년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습니다.

이렇듯 인연은 놀라운 기적을 만듭니다.

2015년 9월 23일 수요일은 제2회 ‘노을’ 동요제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부를 노래 가운데  2015년 10월 18일에 치러질 ‘노을’ 동요제 본심에 오를 15팀을 가리는 예심을 하는 날입니다.

지난 2010년 당시에는 평택문화원 사무국장이었고 현재는 평택시사신문사 편집국장이자 대표로 평택시사신문사를 이끌어 가고 있는 박성복 국장의 노력으로 제1회 ‘노을’ 동요제가 열리고 난 뒤 꼭 5년 만에 다시 열리는 이번 동요제 역시 동요 ‘노을’을 평택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박성복 국장의 끈질긴 노력과 집념으로 자칫 끊어질 뻔 했던 ‘노을’ 동요제가 사라지지 않게 됐습니다.

경향 각지에서 열리는 온갖 다양한 축제가 하나같이 먹자판이고 관객 동원을 위해 알맹이는 하나 없이 외향적인 것에만 치우치고 상업화 되는 것을 뜻있는 많은 분들께서 우려하는 이 시점에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며 아름다운 마음을 대대로 이어나갈 전국 어린이 동요제를 여는 것은 다른 어느 축제보다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이며 이 글을 통해 박성복 국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2004년, 그러니까 1984년 제2회 MBC 창작동요제가 치러지고 난 꼭 20년 뒤인 2004년 MBC문화방송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당당히 우리나라 사람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장 즐겨 부르는 동요 1위로 뽑히기도 했던 동요 ‘노을’은 어느새 세상에 태어난 지 31년이나 됐습니다.

작곡자 최현규 선생은 바로 동요 ‘노을’이 만들어진 군문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성동초등학교·한광중학교를 거쳐 한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최현규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73년 최현규 선생이 한광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리고 최현규 선생이 군대를 갈 무렵부터 한 공간 안에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만난 최현규 선생은 군 복무 때 만들어 둔 악보를 내밀었습니다. 바로 MBC 창작동요제를 위한 작곡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동요 ‘노을’은 탄생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최현규 선생과의 인연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인연에 감사합니다.

-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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