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수의 집 바로 옆엔
미군 기지촌이 있었다

쑥고개 연작을 통한 그의 시적 정서는
고향에 근간을 두었다

 

이제 그의 고향도
늦었으나마 천재 요절시인,
박석수를 기리고 있다.
평택 일대에서 박석수 백일장이며
박석수 생애의 자료관, 시비詩碑 외에도
매달 정례적 토론회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10대에 부모를 연이어 잃은
그의 아들 우람이가 세상 속으로 들어와
‘보르자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는 일이다.

 

 

▲ 박석수의 시적 정서는 고향 쑥고개에 있다

 

평택출신 박석수 시인이 타계한지도 어느새 20여년이 되어간다. 누구보다 시를 사랑하고 평택을 사랑한 요절 시인 박석수, <평택시사신문>은 이번호부터 4회에 걸쳐 본지 임봄 취재부장과 생전에 박석수 시인과 귀한 인연을 이었던 김추인 시인의 입을 통해 문학세계를 빛낸 시인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며 독자와의 소중한 시간을 갖고자 한다.- 편집자 주 -

 

 

▲ 신장동 거리(1960년대)

④ 쑥고개의 요절시인, 박석수를 생각한다

 

■ 박석수, 그의 시적 정서는 고향에
박석수의 고향 지인知人 중에는 그가 고향 평택을 외면했다하여 사과해야 한다고 피력하기도 했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다.

마을은 철조망 속 휘파람
소리 일찍 저물고
저문 들녘의 무거운 정적 속에서
구중의 땅 밑을 헤매던
누이의 눈물은 피가 되었다.
왕복 엽서처럼 구겨질 대로 구겨진
누이의 눈물은 피가 되었다.
철수하는 미군의 가슴이나
태평양이나 아메리카로도
닦여지지 않는
누이의 눈물은 피가 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한반도의
가장 참혹한 노을이 되었다.

노을 - 쑥고개4

송탄 박석수의 집 바로 옆엔 미군 기지촌이 있었다. 쑥고개 연작을 통한 그의 시적 정서는 고향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당대의 아픔이나 사회적 어둠상황을 내 안으로 당겨 내 누이의 고통으로 분노로 비애로 형상화한 것이 여실히 보인다. 그뿐 아니라 심미주의를 저변에 깔고 그의 모든 소설들과 꽁트들은 시대의 어긋난 체제, 강자와 약자의 고리, 부조리한 어둠상황을 때론 날카롭게 때론 해학적 익살로 풍자의 방식을 끌어와 우회적으로 질타한 그가 아닌가. 그는 예술의 미학으로 서정을 가장 중시한 동시에 잘못 가는 사회에 침묵해선 안 된다 피력하곤 했다.
어느 해 세밑이다. 마지막 달력장이 뜯겨질 무렵. 그가 작품이 실린 신문 한 장을 내밀어 의아했었다. 시를 쓰다니! 쑥고개 이후 소설만을 고집하던 그였으니까

시가 있는 토요일
연가戀歌

어느 날 밤 그녀는 한 장의
전문처럼
내 가슴으로 날아왔다
.............중략

누가 내게도 환상의
날개를 달아주렴아
       
나도 한 장의
전문이 되어 그녀의 꿈속을 지나
그 가슴으로 가고 싶다

<시작노트>
짝사랑 그 불면과 괴로움, 나는 짝사랑의 귀재다. 상대방이 눈치 못 채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 불면과 괴로움은 크다. 이 연가는 전에 내게 불면과 괴로움을 주었던 한 여인을 그리며 쓴 것이다.

“간명하고도 좋은 연시네요, 옛 연인인가 봐요”
그는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었다.

 

▲ 오산에어베이스(1960년대)

■ 박석수의 죽음과 우람이와의 인연
1995년, 1월 30일, 그의 부인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 산소호흡기와 각종 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앙상한 팔다리의 처연한 모습이다.
“여보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김추인 선생님이잖아요 제발 눈뜨고 말 좀 해봐요”
부인은 그의 앙상한 가슴을 흔들며 다그친다. 그는 안개 속을 헤매는지 희미한 눈을 뜨는가 싶더니 나를 보고 어슴푸레 웃는다.
“아-웃었다 웃었다. 당신 정신 나는 거지 맞지?”
면회시간이 끝나고도 또 그 뒤로도 두 여자는 자주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며 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1996년 9월 8일은 그를 마지막 본 날. 정작 박석수가 운명한 9월 12일에는 내 전화번호를 유일하게 아는 부인도 아무 소식이 없었고 나는 그의 죽음을 까맣게 몰랐다. 우린 그렇게 허허 로이 이별을 한 것. 오래지않아 부인도 이미 간암 말기, 어린 아들 하나 달랑 두고 하늘로 가고 그 아들 우람이와의 긴 인연은 곱게 이어가고 있으니 우린 먼 먼 전생으로부터 닿아있는 인연이지 싶다.
이제 그의 고향도 늦었으나마 천재 요절시인, 박석수를 기리고 있다. 평택 일대에서 박석수 백일장이며 박석수 생애의 자료관, 시비詩碑, 외에도 매달 정례적 토론회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10대에 부모를 연이어 잃고 병적으로 세상을 피하던 그의 아들 우람이가 세상 속으로 들어와 ‘보르자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는 일이다. 판타지풍의 장편 소설집을 벌써 일곱 권이나 출간했다니 그 아버지에 그 아들 피의 내림이겠다.
박석수, 그를 기억한다. 빗발이라도 흩뿌리는 꿀꿀한 창밖을 넋 놓고 내다보다 문득 생각나기도 하던 쌉싸름한 사람, 세상에 대한 울분을 가슴가득 품었지만 사람을 배려하고 더없이 유순하기만 하던 따뜻한 작가. 눈발이라도 날리려나 하늘이 그날처럼 잿빛이다. 기억들이 우우 창밖에 서있다.
“잘 있는 거죠? 우람인 훌륭하게 장성했으니 암 걱정마세요”(포엠포엠, 2014년 겨울호 발표)

 

▲ 평택문화원 소장 우대식 시인 시집 방화(박성복 평택시사신문 대표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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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석수 시인
1949년 경기도 평택군 송탄면 지산리 출생. 1970년 수원북중을 거쳐 삼일상고 졸업. 1971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술래의 잠> 당선. 1976년 제1시집 <술래의 노래> (시문학사) 간행. 1979년 변두리 잡지사를 전전하다 <여원>에 입사, <직장인> 편집장 역임. 1981년 <월간문학> 신인상 소설 당선. 1983년 제2시집 <방화> (평민사) 간행. 1987년 제3시집 <쑥고개> (문학사상사) 간행. 1996년 뇌졸중으로 투병하다 별세.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 생전에 <철조망 속 휘파람>, <차표 한 장> 등 소설집을 펴냄.

   
▲ 김추인 시인
■ 김추인 시인
1947년 경상남도 함양에서  출생.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 1986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온몸을 흔들어 넋을 깨우고>, <나는 빨래예요>,  <광화문 네거리는 안개주위보>, <벽으로부터의 외출>,  <모든 하루는 낯설다>, <전갈의 땅>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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