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4월 23일

인천·서울지역 근대문명 시설 관람
견학단, 일제 식민통치 미화 목적

“◇ 日時 : 四月二十三,四日 兩日間”
 ◇ 見學場所 : 仁川=仁川市內, 各公園, 仁川閘門, 月尾島, 潮湯 等
               京城=總督府 新廳舍, 昌慶苑, 各,公園, 各 新聞社 等
◇ 申請場所 : 東亞日報 平澤支局
◇ 申請期限 : 4四月 二十二日까지
◇ 會費 : 一人前四圓(汽車賃 食費 等)
◇ 主催 : 平澤朝鮮東亞 兩 支局(동아일보, 1927년 4월 21일자)

 
견학단(見學團)은 ‘어떤 장소를 직접 방문해 그곳에서 구체적인 지식을 배우기 위해 조직한 단체’를 일컫는다. 이른바 근대 이후 국내에서 견학단이 조직돼 견학을 떠난 것은 ‘이천견학단’이 처음이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5월 4일자에 의하면 ‘이천견학단’이 서울의 여러 곳을 견학한 것이다. 이후 각 지역에서 견학단을 조직해 근대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공원 등 새로운 시설을 관람했다.

평택에서도 1927년 근대시설의 집중돼 있는 인천과 서울을 견학했다. 실제 견학단의 활동에 대한 기사가 없어서 아쉽지만 당시 견학단 모집 광고를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견학하고자 한 날인 1927년 4월 23일과 24일 양일 동안이었다. 견학 장소는 인천과 서울이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인천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된 인천 시내·만국공원 등 근대공원·인천항 갑문·월미도·바닷물로 만든 목욕탕 등이었다. 그리고 서울은 식민지배통치의 상징으로 1926년 새로 건립한 신청사, 원래는 창경궁이었지만 격하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동물원을 설치한 창경원, 서울 시내의 근대 공원, 그리고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 등이었다. 이들 견학지는 대부분 근대문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제의 식민통치를 미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문명을 견학하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견학을 신청 받은 곳은 동아일보 평택지국이었으며 주최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평택지국이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참가비였는데 1인당 4원이었다. 이 4원에는 평택~인천~서울을 왕복하는 찻삯과 식대, 그리고 숙박비 등이었다. 그런데 모집광고에 의하면 ‘일인전(一人前)’이라고 돼있는데 이는 ‘일인당(一人當)’의 오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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