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올바로 알지 못하는 민족은
영원히 저주 받는다”고 했다.
요즘 국정화 교과서를 논하는 것은
역사를 ‘올바르게’ 잡자는 내용이다.
집필자의 의도도 있겠지만
역사는 소설이 아니다.
진실만이 존재한다.

 

▲ 이세재/전 청북초등학교장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책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과 불경일 것이다. 오로지 진실과 사실에 근거한 철학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요즘 국사교과서 집필 때문에 전국이 시끄럽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식으로 역사관의 차이는 서로가 다를 수 있다. 역사는 사실과 진실에 근간을 두고, 올바른 기록만이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가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올바로 알지 못하는 민족은 영원히 저주 받는다”고 했다. 요즘 국정화 교과서를 논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잡아 놓자는 내용이다. 집필자의 의도도 있겠지만 역사는 소설이 아니다. 진실만이 존재한다.

최근 지상의 매스컴을 듣고 보노라면 참으로 가관이다. 대부분의 집필진들은 우리의 한국전쟁을 국지전으로 서술하여 북한의 전쟁도발을 희석시키고, 소련을 해방자요 미군을 점령자라는 인상으로 서술하며, 북한의 핵개발은 군비 축소와 에너지 개발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기업가의 노력은 없고 노동자의 희생만을 부각하고 있기에, 전태일은 있어도 이병철·정주영·구인회는 없었다.

부산의 어느 교사는 수업현장에서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민족의 반역자요 플레이보이며 개×× 라고 설명하고, 이승만이 미국한테 매달려서 우리나라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그래서 6.25한국전쟁이 일어났는데 당시에 미국이 아니었으면 통일이 되었을 것”이라 설명하고 “박정희는 술과 여자를 엄청 좋아하여 술 먹다 정보부장에게 총살을 당했고, 남한보다는 북한이 더욱 살기 좋은 나라로서 북한을 본 받아야 한다”고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서울의 모 교사들은 “박정희는 독립군을 때려 죽였고, 세월호 사건을 보니 지 애비가 하던 짓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으며,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유관순을 여자깡패로 표현하고, 박정희 시대에 나쁜 짓을 한 기업이나 사람들은 지금 다 갑부가 되었다”고 설명하니까, 모 학생은 왜 이러한 잘못된 교육을 하느냐고 반문하면서 관계 당국에 고발을 하였다는 내용들이다.

이토록 특정한 인물의 국가원수만을 험담·비방·모독하고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자유 분망한 민주국가일까! 과연 북한에도 그럴까? 돈 먹은 대통령과 죽은 대통령은 그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우리는 건국 대통령의 기념관과 동상 하나가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최근에 중국은 동북공정의 역사를, 일본은 위안부와 영토의 문제를 왜곡 변질 시켜가면서까지 정당화하고 미화하며 합리화해 나가고 있다. 그러기에 주변국과의 마찰을 빚고, 우리는 이를 올바로 잡아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정상회담까지 미루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우리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사실과 진실에 입각한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써 나가자고 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그네들은 국가와 민족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와 배신을 받아 왔기에, 그러한 사관의식을 갖고 상대를 옹호하고 미화하려는 것일까? 그렇다면 북한에 가서 교육을 하면 어떨까? 자신들의 족보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오히려 그네들의 실력과 사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과 역사는 오로지 사실과 진실뿐이다. 우리는 정통성 있는 자랑스러운 역사와 긍지 높은 민족사관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더욱 웃기는 일은 역사학회와 교수들의 행동이다. 개인의 사관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자신만이 집필 거부를 하면 될 것을, 전체가 집단행동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현실이다. 옆 사람의 눈치를 보기에 앞서 소신과 철학을 갖고 정의에 앞장서야 할 교수요 학자들이 왜 그렇게도 나약하고 비굴한가? 학회의 조직은 무엇을 위한 존재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일부 교육감들은 때를 노린 듯,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 인정 부교재를 만들어 사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점입가경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거늘 민주주의도 등이 따습고 배가 불러야 될 일이 아닌가? 어느 시대이건 항상 빛과 그림자는 존재하여 공(功)·과(過)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신물 나는 이념 논쟁은 이제 끝내고, 긍정과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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