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평생 만든 전통 수의, “망자 마음까지 헤아려”

수의제작부문 ‘경기 으뜸이’ 선정
윤달·윤년에는 수의마련하기 좋아

 
이승에서 입게 되는 마지막 옷 ‘수의’는 대부분 죽음과 대면하고 나서야 필요성을 생각하게 되는 옷이다. 때문에 수의를 볼 때면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저고리 앞섶까지 세심하게
“예부터 수의는 승복이나 관복, 도포, 한복까지 다 만들 줄 아는 사람만이 손을 댈 수 있었어. 수의는 단순히 예쁘고 몸에 맞는다고 되는 옷이 아니거든. 솜씨도 솜씨지만 죽은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관록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옷이었지”
평택 토박이로 80평생 바느질과 함께 해 온 한상길(86) 할머니는 수의 제작을 전수받고 있는 며느리가잠시의 방심이라도 있을라치면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어김없이 지적해 낸다고.
“죽은 사람이니까 모를 거라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만들면 쓰나. 섶도 제대로 빼야 하고 산자와 죽은 자를 구분하는 저고리 여밈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야지. 수의는 반드시 오른쪽 자락이 위로 올라와야 하거든. 그래도 이승에서 입고 가는 마지막 옷인데 최대한 정성스럽게 만들어야지”
한상길 할머니는 사람들이 살아있을 때는 명품이다 뭐다 좋은 옷들을 많이 사 입기도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는 누구나 수의 한 벌 입고 가는 것이라며 그런 만큼 최대한 정성스럽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상길 할머니가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수의는 100% 삼베를 사용해 두루마기와 저고리, 바지, 버선, 신발, 이불 등 16가지가 포함돼 있다.

7살에 시작한 바느질 86살까지
“7살 때부터 바느질을 시작했지. 9살에는 저고리를 만들어 입었고. 처음에는 장난으로 여기던 부모님이 바늘에 찔려 손도 다치고 하니까 바느질 하지 말라고 많이 때리기도 하셨어. 그리고 다신 바느질 못하게 반짇고리를 높은 장롱위에 숨겨두기도 했었는데 부모님이 안계시면 용케 찾아내 또 바느질을 하곤 했지. 난 왠지 바느질 하는 게 좋았어. 그 뒤부터는 동네에 불려 다니며 바느질을 했는데 시집와서 시집살이를 많이 안했던 이유도 바로 바느질 때문이었지”
한상길 할머니는 13살 정도가 되면서 부터는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동네를 돌아다니며 수의를 만들곤 했다. 할머니가 만든 수의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 199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의제작에 나서 현재에 이르렀다고.
“전통수의는 옷본이 전통방식을 따른다는 거야. 요즘 엉터리로 만드는 수의들은 옷본조각도 제멋대로고 삼베를 아끼기 위해 통도 좁고 화학섬유로 만든 수의를 판매하거나 나일론실을 쓰기도 하지만 그건 절대 안 되지. 시신이 흙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화학섬유나 나일론은 썩지 않고 시신에 그대로 남아있거든. 수의는 순 면실을 사용하고 삼베를 사용해야지. 요즘 국내에서는 삼베 생산하는 곳이 별로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중국에서 삼베를 가져다 쓰고 있는데 좋은 삼베를 찾기 위해 중국만 6번이나 왔다 갔다 했어. 덕분에 중국에서 나는 거지만 좋은 삼베를 발견해 수의를 제작하고 있지. 만일 국내에서 생산되는 안동산 삼베로 전통수의 한 벌을 만든다면 가격만 해도 1000만원은 줘야해. 그게 가장 좋겠지만 서민들이 그렇게 비싼 수의를 입기엔 너무 힘들잖아”
할머니가 만드는 전통수의는 옷을 입힐 때 시신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통이 아주 넓은 것이 특징이다. 할머니가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전통수의는 한 벌에 약 180만 원 정도인데 사람을 두고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수의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도통 할머니 마음에 들게 옷이 나오지 않자 지금은 며느리와 둘이서만 수의를 만들고 있다.

며느리와 전통 잇는 자부심 있어
“올해는 임진년에 흑룡해이고 윤달이 들어서 1년 내내 수의 마련하기 좋은 해지. 수의를 미리 마련해두면 무병장수 한다고 하잖아? 비록 돈을 받긴 하지만 수의를 만드는 순간부터 한 벌을 끝내는 순간까지 삼베며 실이며 만드는 것까지 정성을 들여 만든 옷이라 돈 이상의 가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또 그걸 떠나서라도 내가 이승에서 마지막 입고갈 옷인데 살아있을 때 미리 마련해 놓으면 좋지. 나도 우리 부부 수의를 미리 만들어 놓았는데 꺼내 볼 때마다 흐뭇해. 왠지 든든하고”
한상길 할머니는 1999년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경기도가 선정하는 수의제작 부문 ‘경기 으뜸이’로 뽑히기도 했다. 
“사람은 비록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 끝이지만 선조들이 남긴 전통까지 사라지면 그땐 뿌리가 사라지는 거잖아. 수의 만드는 것도 지금은 내 며느리가 하는데 이젠 아주 마음에 들게 잘 해. 그래도 며느리가 있어서 전통수의를 이어갈 수 있으니까 나야 고맙지”
누구든 이승의 소풍을 끝내고 돌아갈 때 마지막 한 벌 걸치고 가는 수의, 가장 편안하게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연친화적인 삼베와 면실을 사용해 망자의 마음까지 헤아려 조심스럽게 바느질 한다는 한상길 할머니는 오늘도 며느리와 나란히 앉아 한 땀 한 땀 손끝에서 배어나오는 정성과 자부심으로 수의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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