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환우와 떠난 행복한 ‘초록여행’

환자와 자원봉사자들이 하나 돼 행복한 추억 만들기
평택호스피스·굿모닝병원·자원봉사자 함께 마련

 
말기 암으로 투병중인 환우들이 5월 29일 갑갑한 병실에서 벗어나 꽃과 자연, 사람이 어우러진 용인 에버랜드로 행복한 일일여행을 떠났다.
말기 암 환자들의 투병을 도와주는 평택호스피스와 환자들을 치료하는 굿모닝병원, 그리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올 4월에 개소한 평택웰다잉(Well-dying) 연구소,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한 이번 여행은 수만 송이의 화사한 장미로 축제가 한창인 에버랜드로 함께 여행을 떠남으로써 환우들과 자원봉사자 모두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말기 암 환우 10명과 자원봉사자, 굿모닝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등 40여명이 함께 한 이번 여행은 그동안 함께 하기 어려웠던 평택보건소 가정방문 환우들도 함께 한 자리여서 더욱 뜻 깊은 시간으로 진행됐다.
이중에는 에버랜드를 생전 처음 온 환우들도 있었는데 호랑이와 사자 등 동물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사파리를 차로 이동하며 “진짜 살아있는 동물을 잘 봤다” “가족들도 서로가 바빠 이런 여행을 엄두도 못 내는데 오늘 이런 기회가 주어져 정말 행복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며 모처럼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부부와 함께, 가족과 함께 한 사람들에게도 이날 여행은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한 노부부는 할아버지가 말기암환자인데 휠체어는 할머니가 타고 있어 왜 그러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얼마 전 수술을 했기 때문에 휠체어는 양보하고 자신은 운동할 겸 해서 걷고 있다고 답해 아픈 중에도 서로를 마음으로 배려하는 노부부의 잔잔한 사랑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에버랜드에 도착한 환우와 자원봉사자들은 오르막길에서 휠체어를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환자들이 최대한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띠어 흐뭇함을 더했다. 휠체어로 오르지 못하는 곳은 자원봉사자들이 환우들을 직접 업고 이동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에는 집에서 정성스럽게 마련해온 음식을 나눠먹은 뒤 환우들과 자원봉사자 모두에게 설문지가 주어졌다. 오늘의 느낌을 글로 적거나 내 인생이 며칠 남지 않았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 그리고 내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 누군가에게 유언을 쓰는 설문지였는데 환우들과 자원봉사자 모두 진지하게 설문에 임해 잠시 숙연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박종승 목사는 이날 작성한 설문지를 읽어주는 시간을 마련했는데 많은 환우들이 이번 여행의 느낌을 ‘초록여행’이라고 대답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병상에서는 자주 접할 수 없었던 신록의 푸름이 모두에게 강하게 각인된 것으로 온 세상이 녹색인 5월의 여행을 싱그러운 초록여행으로 기억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며 다들 입을 모았다.
또, 어떤 환우는 ‘사랑은 받는 게 아니고 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오늘 자리를 마련한 분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또 어떤 환우는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올 때마다 곁에서 물불 안 가리고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 그나마 견딜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도 말기암환자인데 딸도 투병중이라며 눈물을 흘리던 여성 환우는 만일 자신에게 생의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면 욕심을 버리고 싶다고 말해 함께 한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만들었다.
이번 여행을 추진한 평택호스피스 박종승 목사는 “해마다 다녀온 뒤에는 미흡한 점을 추려 조금 더 알차고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며 “모든 환우 여러분들이 오늘만큼은 육신의 고통을 모두 내려놓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환우와 자원봉사자로부터 고마움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박종승 목사는 또한 “지난해에 다녀온 분들 중에는 이미 생을 마감하신 분들도 있어 마음이 아프다”며 “유가족들이 추후에 전화를 해서 환자가 에버랜드 다녀온 여행을 못 잊어 두고두고 이야기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매년 조금 더 좋은 여행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이날 여행의 의미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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