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없는 삶은 없다.
중요한 것은 냉정한 평가와 반성,
올바른 수정이다.
옳은 것은 계승하고
잘못된 것은
과감히 버리고 수정하며,
푯대를 바로 세우고
열정적으로 실천하는 자세다

 

 

 

   
▲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욕심 많은 부자가 랍비를 찾아가서 답답한 심정을 호소했다. ‘선생님 저는 돈이 많은 데도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부자를 데리고 창가로 갔다. ‘무엇이 보입니까?’ 부자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이번에는 거울 앞으로 데려갔다. ‘무엇이 보입니까?’ 부자가 대답했다. ‘제 모습입니다’ 부자를 응시하던 랍비는 엄중히 타일렀다. ‘유리에 은이 칠해져 있을 때는 오직 자신만이 보입니다. 스스로 독선과 편견, 아집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세상이 보이고 이웃이 보입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지요’

오랫동안 필자가 좌우명으로 삼았던 글귀가 있다. ‘무감어수無鑑於水 감어인鑑於人)’이다. ‘국어國語’라는 역사책에 나오는 것으로 ‘물속에 자신을 비춰보지 말고 사람들 안에 자신을 비춰라’라는 말이다. 묵자도 ‘군자불경어수이경어인君子不鏡於水而鏡於人’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군자는 물로 거울을 삼지 않고 사람으로 거울을 삼는다’라는 말씀이다.

연말이 되면 세상이 바빠진다. 정치인들은 성과를 포장해서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시민들은 한 해 동안의 삶을 평가하고 묵은 때를 씻어내려 한다. 각종 송년모임을 통해 일상 속에서 챙기지 못했던 지인들과 회포를 풀기도 한다. 평가하고 다시 섬을 준비하는 시간이 연말이다. ‘평가’라는 단어는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역사의 평가대 앞에 서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산다. 한 때는 정치권력을 가졌다고, 엄청난 재물을 소유했다고 떵떵거리던 사람도 종말에는 세월에는 장사 없고 권불십년權不十年임을 깨닫는다.

필자가 생각하는 평가의 3단계는 이렇다. 일단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기,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기, 세상 앞에 나를 비춰보기. 평가를 위해서는 일단 멈춰서는 것이 중요하다. 멈춰 서지 않으면 뒤를 제대로 돌아다 볼 수 없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삶이, 내가 했던 행위가 가치 있고 올바른지 점검하기 힘들다. 자신을 아는 것,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런 뒤에 세상의 거울 앞에 서야 한다. 스스로의 삶에 도취되지 말고 세미한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 개인적인 삶이 객관화된다.

올 해는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역사를 연구하는 필자를 기쁘게 했던 일들 가운데 가장 기뻤던 일은 ‘평택학 학술대회’가 지속적으로 개최된 것이다. 지역학 학술대회의 지속적 개최는 지역학 연구를 진일보시키는 일이다. 평택시의 지원으로 ‘사라져가는 마을 지표조사 및 구술조사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참으로 기쁜 일이었다. ‘마을은 박물관과 같다’라고 말하는데 그동안 사라지는 마을을 안타까운 눈으로만 바라봤던 마음이 조금은 위로되었다. 몇몇 인사들이 ‘섶길’이라고 명명된 옛길을 발굴하고 시민들과 함께 향유했던 일도 의미 있는 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아쉬움은 ‘박물관 건립’ 문제다. 올해 평택시가 박물관 건립의 첫 삽을 뜬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지역박물관 건립에 지역사회의 의견과 여론을 수렴하고 공론에 따라 추진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평택시청 전문학예사 배치가 시의회를 비롯한 정치권의 이해 부족으로 표류하게 된 것도 큰 아쉬움이다. 평택시가 경제적 발전 뿐 아니라 정신문화 발전을 균형 있게 달성하려면 문화적 역량을 갖춘 인재들을 영입하고 활용해야 하는데 정치적 이해관계의 충돌로 그 첫 삽마저 표류하는 현실은 안타까울 뿐이다.

아쉬움이 없는 삶은 없다. 중요한 것은 냉정한 평가와 반성, 올바른 수정이다. 옳은 것은 계승하고 잘못된 것은 과감히 버리고 수정하며, 푯대를 바로 세우고 열정적으로 실천하는 자세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우리를 물속에만 비춰보지만 말고 진정으로 세상 속에 비춰봐야 한다. 감어인鑑於人의 자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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