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을 21만원으로 인상한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새누리당의 약속은 사라지고
2015년 농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15만원도 안 되는 쌀값 폭락과
미국산·중국산 밥쌀 수입뿐이다

 

   
▲ 이상규 정책실장
평택농민회

다사다난했던 2015년,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이 순간 갑자기 김지하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 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아 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한국인에게 밥은 어떤 의미인가? ‘밥은 하늘이다’라는 말은 동학에서 처음 나왔다.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은 ‘밥 한 그릇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밥 한 그릇에 온갖 진리가 담겨있고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밥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밥은 우리 민족문화의 근간이며 민족의 혼이 담겨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 한국인에게 밥은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이다. 우리 민족에게 쌀은 하나의 문화이며 혼이다. 아이가 태어날 무렵이면 정성스럽게 준비한 쌀 한 그릇, 미역 한 다발과 더불어 정화수를 떠 놓고 삼신에게 기원했다. 출산 후 쌀로 밥을 짓고 미역국을 먹었다. 가족은 ‘식구食口’ 밥을 나누는 사람이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에겐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인사를 건넨다. 이렇듯 밥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음식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신성한 것이며 삶 자체인 것이다.
쌀을 수확하기까지 여든여덟 번 농부의 손길이 간다고 한다. 한자의 ‘쌀 미米’ 자가 바로 팔십팔(八十八)을 형상화한 것이란다. 쌀 한 톨에 얼마나 많은 농부의 땀방울이 맺혀 있는지를 말해는 주는 표현일진데 2015년 무엇 때문에 그토록 정성스럽게 생산한 우리 쌀이, 소중한 우리 쌀이 천덕꾸러기가 되었단 말인가?
바로 정부의 ‘쌀 농사포기 정책’ 때문이다. “쌀값을 21만원으로 인상해 주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쌀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새누리당의 약속은 사라지고 2015년 농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15만원도 안 되는 쌀값 폭락과 수입의무가 사라졌는데도 미국산·중국산 밥쌀을 수입하겠다는 정부의 밥쌀 수입 방침뿐이다. 해마다 들여오는 수입쌀이 넘쳐나 농민들이 생산한 쌀값이 떨어지고 멀리 외국에서 수입해온 쌀은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다. 이를 보다 못한 농민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생산비도 건질 수 없는 쌀농사 대신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아스팔트 농사’를 짓는다.
우리에게 2015년 밥은 더 이상 하늘이 아니다. 자판기 커피 한 잔 값보다, 껌 한 통 값보다도 못한 밥은 이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이제 우리 겨레의 삶과 혼이 담긴 쌀은 박물관 구석에 보관 되었거나 타임캡슐에 담겨 저 우주 멀리 보내졌는지 모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저 내 일이 아니니까, 농부가 쌀농사를 포기하면 이때다 싶어 싼값에 수입해오는 외국산 쌀을 사 먹으면 되니까, 그저 바라볼 뿐인가?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약속을 지키면 된다.
이제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1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1932년 상해 홍구공원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폭탄을 투척했던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농민독본’ 한 글귀가 머릿속을 맴돈다. “농민은 인류의 생명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이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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