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4월 16일

 

안중금융조합, 대부금 이자 연체에 만행
조합원 칼로 위협하는 그림 사무실 붙여

 

 

“경기도 진위군 오성면 안중(京畿道 振威郡 梧城面 安仲) 금융조합 이사 류준희(柳準熙)는 대부금 체납자 백여 명에게 연체이식(延滯利息)을 내이도록 하는 자는 적(敵)이니 발검정벌(拔劍征伐)을 막부득(莫不得)이란 선언서를 배부하였고, 그 조합 사무실 벽에다가 전기 류준희는 손에 칼을 들고 조합원을 찌르려는 모양과 조합원은 두 손을 들고 비는 모양으로 그림을 그려서 부쳤으므로 조합원 일동은 이에 분개하여 칠팔명이 탈퇴하였고 일반인민들도 비평이 자자하더라”(동아일보, 1924년 4월 16일자)

일제강점기 금융조합은 군 단위 이하의 농촌에서 농업자금의 대부, 농산물의 위탁판매, 종자·비료·농구 등의 분배, 대여업무 등을 수행했다. 즉 금융기관의 일종이었다. 1907년 5월 대한제국기 ‘지방금융조합규칙’과 ‘지방금융조합 설립에 관한 건’이 공포됐고 그 해 8월에 광주光州지방 금융조합이 처음 설립됐으며 1910년 6월까지 130개로 늘어났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과 1918년에 법령 개정으로 농촌과 도시에도 조합을 설치하고 각 도에 금융조합연합회를 결성했고 1918년 6월 ‘금융조합령’이 제정되면서 지방금융조합도 금융조합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안중금융조합은 1919년 9월 13일에 설립됐고 1927년 현재 자본금은 1만 7820원이었다. 1927년 당시 대표는 정우흥鄭雨興, 이사는 일본인 미쓰이 마사이치三井正一이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금융조합은 농민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부업체이기도 했다. 오늘날 농협과 같은 역할을 했는데 일부 금융조합이 악덕 사채업과 같이 농민들을 착취하기도 했다. 그 중에 안중금융조합이 해당했다.

안중금융조합 설립 당시 임원은 확인이 어렵지만 1924년 류준희라는 이사가 있었다. 류준희는 돈을 빌려간 농민들이 이자를 제대로 내지 않을 경우 공갈과 협박을 하는 등 만행을 일삼았다. 1924년 4월 중순 춘궁기이고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농민들이 이자를 갚지 못하자 이를 적으로 간주하고 칼로 쳐 죽여야 한다는 선언서를 배포하는가 하면 사무실에 벽에 칼을 들고 조합원을 찌르는 그림과 조합원이 두 손을 들고 비는 그림을 붙여 놓았다. 이에 조합원은 분개를 하고 70~80여 명이 조합원에서 탈퇴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류준희의 포악한 행위는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져 비난을 면치 못하였다. 1927년경 류준희는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양곡리로 이거했고 양곡금융조합의 이사로 활동했다. 그곳에서도 그리 환영을 받지 못한 듯하다. 2년 후인 1931년에는 파주군 아동면 금촌리에 있는 금촌금융조합에서 이사로 활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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