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은 자기 논리로 무장해 앞만 보고 달린다
상임위 배분에 대립 지속되면 나라의 앞날은 절망적

아주 어릴 적 시골에서 외할머니가 들러 준 옛이야기 중 새우젓 장사로 몰락한 양반의 일화가 있다. 굶주리다 못해 새우젓 통을 짊어지고 거리에 나서긴 했지만 막상 ‘새우젓 사려’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그 때 마침 굴비 장사가 ‘굴비 사려’라고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지나간다. 양반은 얼른 굴비 장사를 뒤쫓아 가며 모기만한 소리로 ‘새우젓도 요’ 했단다. 아무리 몰락은 했어도 체면치레는 여전히 버릴 수가 없었던 게다.
요즘의 정치권을 보면서 ‘양반 새우젓 장수’의 답답하고 꽉 막힌 체면치레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지막 생계수단임에도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는 못해 주저하고 망설이며 말조차도 어눌한 양반의 태도가 오히려 신선해 보이니 어쩌란 말인가.
언젠가부터 이 땅에 사는 사회구성원 대다수는 체면치레를 모르고 산다. 달려도 그냥 달리는 게 아니라 편 가르며 내 편, 네 편으로 달리니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다 보니 양쪽으로부터 치이고 밟혀 죽어만 간다.
극단주의 앞에 중간 지대는 없는 법. 요즘 정치권을 보면 모두들 자기편 논리만 앵무새처럼 되뇌면서 그저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한다. 그런 부류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고. 남을 속이려면 먼저 나부터 철저히 속여야 한다는 것을 이번 19대 국회가 등원하면서 재차 깨달았다. 그들은 선거 전 국민에게 했던 약속은 잊은 듯 오직 정권을 잡기위해서는 체면이고, 윤리고, 도덕적인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규칙도, 원칙도, 싹 무시하고 때로는 본심마저 버린다. 그 씁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같은 생태는 결국 과도한 자기 확신과 상대에 대한 증오감이 일상화 된 오늘의 세태를 여실히 드러내는 진리 정치(Politics of truth)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정치행위 자체를 진리의 실현으로 보는 탓에 자기만 진리이고 상대는 허위라고 보는 것이다.
일본인이 즐겨 찾는 한국 음식은 비빔밥이다. 일본 문화에서는 서로 다른 음식을 결코 비비는 일은 없다. 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한국의 비빔밥의 대단한 격식의 파괴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말 할 것도 없이 비빔의 문화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채소와 밥. 참기름과 고추장 등의 재료가 섞여서 비빔밥으로 태어난다.
그런데 ‘비빔의 문화’에는 전제 조건이 있는데 서로 인정 할 때 비로소 비빔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비빔을 통해야만 발효가 된다. 각 재료의 고유한 맛이 섞이고 물들고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승화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익은 김치의 맛이 나오게 되고, 고추장의 맛, 참기름 맛도 밥맛도 아닌 비빔밥 특유의 맛이 나오게 되면서 구미가 땡 기는 것이다. 그게 바로 소통의 맛이고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다.
지금 논쟁이 되고 있는 좌파, 우파, 진보, 보수는 비빔밥의 재료에 불과 할 뿐이다. ‘우리 쪽 나물이 더 많이 들어갔네’ ‘저들의 고추장이 더 많이 들어갔나’만 따지고 싸우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비빔의 큰 이유는 나물을 위함도, 고추장을 위함도 아니다. 또 좌파, 우파로 편 가르는 것도 아니다.
이유는 하나 어떻게 하든 모든 재료를 다 골고루 넣어 최상의 비빔밥을 만들기 위함이 우선이다. 싱싱한 배추에 온갖 양념을 넣고 저려 만든 겉절이의 맛은 일품이지만 그 겉절이로는 김치찌개를 만들 수 없다. 김치찌개를 맛있게 만들려면 군침이 도는 신 김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묵은 신 김치가 필요한 것이다.
얼마 전 언론계에서 고령의 선배들이 후배를 위해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스스로 퇴진해야 한다는 후배들의 말을 듣고 한 말이 있다. 제대로 된 사회가 되려면 민첩하고 활동성 있는 젊은이도 필요하지만 다소 둔해도 오랜 경륜이 있는 나이 많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젊은이와 늙은이가 잘 비벼져야 바른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따져봐야 한다. 과연 이번 19대 의원들은 당리당략을 떠나 국민들을 위해 비벼질 준비가 돼 있는가 하고 말이다. 안보와 국정운영은 엉망이 되더라도 철길처럼 평행선을 향해 달리며 세비만 곳 감 빼먹듯 빼 먹을 것인지, 아니면 실질적인 대안과 정책을 제시하며 비빔밥이 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상대를 비방하면서 자신들의 주장만으로 꽉꽉 채워 도대체 절충할 여지가 없는 작금의 분열상을 떠 올리며 옛날 옛적 몰락한 양반 새우젓 장사의 우유부단하고 순진했던 체면치레가 그 어느 때보다 더 그립다.
요즘처럼 여·야가 개원도 하기 전 상임위 배분을 놓고 지금처럼 대립이 지속된다면 이 나라의 앞날은 여전히 절망적이다. 4·11총선은 끝났지만 12월 대선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 여·야 모두 제발 이성을 찾았으면 한다.

 

深頌 안호원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YTN-저널 편집위원/의학전문 대기자 역임
사회학박사(H.D), 교수, 목사
평택종합고등학교 14회 졸업
영등포구예술인총연합회 부이사장
한국 심성 교육개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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