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얼굴 다르지만 ‘나도 한국인’

부모 따라 중도 입국한 청소년의 적응 지원
아직은 무관심, 우리 사회 꼭 풀어야할 숙제

 
다문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 곁에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마주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정도로 다문화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초창기의 호기심과 배타적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사회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어가고 있으며 다문화 출신의 국회의원이 탄생할 정도로 지위를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인식 개선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변의 관심에서 소외된 다문화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풀어야할 숙제로 남겨져 있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중도입국자녀 문제다.

중도입국자녀 문제 아직 조명 안 돼
평택대학교 다문화지원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디딤돌 스쿨’은 이러한 중도입국자녀를 위해 설립된 학교로 지난 3월 개교 이래 중국, 필리핀, 캐나다, 우즈베키스탄, 독일 등 다양한 곳에서 온 학생을 대상으로 말과 문화를 전수하며 한국정착을 돕고 있다.
이 학교 유진이 교장은 “다문화 성인들을 위한 여러 가지 교육과정은 많은 곳에서 다뤄지고 있으며 각종 지원도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그러나 자신의 뜻이 아닌 부모의 뜻에 의해 나고 자란 국가와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 아이들의 경우 엄청난 정체성 혼란과 부적응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사회적인 관심은 여기까지 못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역설했다.
중국 출신 장순원(18) 군의 어머니가 한국인과 재혼하며 그의 곁을 떠난 것은 10년 전, 순원의 나이 겨우 8살 때였다. 그러나 한국인 아버지는 결혼을 하면서 순원의 존재를 그의 부모에게 숨겨왔고 입국도 5년이 지나서야 겨우 이뤄져 순원은 1년에 한 번씩 잠깐 한국을 방문해 어머니를 볼 수 있었을 뿐, 긴 시간을 생이별의 고통을 안고 살았다.
이런 사정과 그리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는커녕 외출 자체가 어려워 한국에 온지 5년이 다 되도록 친구 하나 없이 집안에서 새로 태어난 동생을 보살피며 감옥 아닌 감옥살이로 지내오던 순원에게 디딤돌스쿨은 새로운 기회로 다가왔다.
“제가 원해서 한국에 온 겁니다. 엄마랑 같이 살고 싶으니까요.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그러려면 빨리 한국말을 배워서 학교도 다녀야죠”
꿈·희망·목표 같은 구체적인 것 보다는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족하다며 웃음 짓는 순원의 미소 띤 얼굴에는 남다른 그늘이 숨어 있다. 한국의 조부모들이 아직도 자신의 존재를 모르고 한국 아버지도 입적에 동의를 해주지 않아 아직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다. 때문에 중국에 있는 친부가 언제 자기를 데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항상 노심초사다.

가장 필요한 것, 소통의 기본인 ‘언어’
“중도입국자녀들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언어교육이고 둘째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죠” 유진이 교장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인데 그 기초가 되는 언어가 자유롭지 못해 주류사회로 녹아들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10세가 넘어 모국어가 고착화된  중도입국자녀들은 한국어 익히기가 가장 어려운 난제로 디딤돌스쿨에 입학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익혀 자유로운 대화를 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와 희망으로 꼽을 정도로 언어문제는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다행히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지원에 나서고 있어 대략적인 학습은 가능한 상태지만 언어강의를 할 수 있는 전문적인 강사를 맘껏 활용하기에는 제정형편이 그리 녹녹치 않은 것이 디딤돌스쿨이 가진 어려움이다.
“먼저 사회적 인식 전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러한 중도입국자녀 문제는 이제 겨우 태동단계지만 향후 다문화사회 규모가 커지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이후에 대책을 마련하면 이미 늦은 것이죠” 유진이 교장은 그들도 똑같이 우리가 돌봐야 할 이웃이요 자녀이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한다.

부모와 함께 살 수 있어서 좋은 곳
검은 피부에 유난히 크고 하얀 눈을 가진 플로라(16) 양은 앙골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내전이 벌어진 조국을 피해 한국으로 탈출, 난민신청을 해 국제난민으로 받아들여져 한국에 정착하게 됐다. 혈혈단신 앙골라에 남겨져 있던 자식을 데려오기 위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한국 땅을 밟은 플로라. 아버지와 꿈에 그리던 상봉을 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막상 이 땅에서의 기억도 즐겁지만은 않았다. 노골적으로,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로 많은 상처를 입은 것.
“한국어를 배우러 근처에 있는 복지센터를 찾아갔어요. 아무도 나한테 말 안했어요. 질문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한국 사람들 내 피부색만 가지고 얘기했어요”
장래 뮤지션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플로라, 그녀 역시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 점으로 “아빠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라고 답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디딤돌스쿨에는 순원이나 플로라 외에도 많은 중도입국자녀들이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필리핀에서 온 세 자매 유나(14), 신혜(13), 다혜(10)는 입국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한국말이 꽤 능숙하다.
자동차 정비사가 되는 꿈을 키워가고 있는 이암(22) 군은 국제자격증을 가지고 있을 만큼 그 분야에서 나름 실력을 쌓아놓고 있다. 그래서 더욱 한국말 배우기에 열심이란다.
장문박(19) 군은 재혼으로 한국에온 어머니를 따라왔으나 한국인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가 다시 이혼하는 바람에 한 부모 가정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지만 역시 꿈을 찾기 위해 디딤돌스쿨 문을 두드렸다.
다문화사회의 도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미군 이전 등 국제화를 추구하고 있는 평택이기에, 아직은 미미하지만 남들은 아직 시도하고 있지 않은 중도입국자녀들을 보살피는 기관이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다름을 포용하고, 보살펴야 할 대상에서 함께 살아야할 동료로 이끌어주는 ‘디딤돌스쿨’이 주목받아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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