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6월 11일

 

일본인 검사원의 무성의한 ‘갑질’ 검사
뿔난 농민, 거칠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어

 

 


 

“경기도 곡물검사 평택지소(京畿道 穀物檢査 平澤支所)에서는 지난 十一일 평택 장날에 ‘가마니’를 가지고 검사를 맡으러 몇 十리 밖에서부터 모여온 바, 검사원 재등(齋藤)의 검사가 도무지 고르지 못함으로 동군 서면 송화리(西面 松花里) 장정득(張丁得) 외 몇 사람이 그 억울함을 말한즉 (중략) 물은즉 취소할 수는 없다고 하므로 경관은 그대로 팔라고 권하나 생산자들은 팔수가 없다고 하며, 오늘은 해가 저물어 ‘가마니’를 다른데 맡기고 다음날에 와서 완전한 해결을 얻으라하므로 농민들은 억울함을 억제하고 돌아갔으나 일반의 비난은 자못 심하더라”(동아일보, 1931년 6월 16일자)

우리 사회에서 ‘평등’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정치적 평등·경제적 평등·사회적 평등 등 다각적인 방면에서 평등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평등을 외치고 주장하고 내걸고 있는 것은 역으로 우리 사회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평등’도 이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왠지 서글퍼지기도 한다. 누구나가 평등한 사회, 사회적 약자가 없는 사회는 불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시기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적 삶을 살아야 했고 삶 자체가 갑·을 관계였다. 그렇게 살아야만 했다. 1931년 경기도곡물검사 평택지소에서 민족 차별적 갑·을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일본인 검사원 사이토齋藤의 갑질이었다. 농가에서는 한 겨울철 부업으로 만든 가마니를 팔기 위해서 곡물검사소에서 등급을 받아야 했다. 검사를 받기 위해 새벽부터 몇 십리 길을 걸어서 왔지만 사이토 감사원은 대충 대충하면서 엉터리였다.
장정득張丁得 등 억울한 농민들이 항의하자 재검사를 했는데 아침부터 기다렸다가 오후 7시가 돼서야 검사를 받았다. 1등한 가마니를 2등으로 매겼다. 농민들이 분개해 항의하자 사이토 감사원은 다른 지역에 가서 팔라고 하면서 발로 가마니를 걷어찼다. 함께 온 농민 수백 명이 거칠게 항의하자 사이토는 도망갔고 농민들은 경찰에 고소를 했다.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 검사소장 역시 이미 검사를 맡은 것을 취소할 수 없다고 갑질을 했다. 어쩔 수 없이 농민들은 돌아갔지만 풍문을 들은 평택사회에서는 비난의 소리가 비등했다. 일제강점기 갑질을 당하며 살았을 평택인의 삶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