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정치권력·재벌의
유착관계를 다룬 이 영화가
현실과 너무나 닮아서
‘영화 속 내용은 허구이며
비슷한 내용은 우연의 일치’라는
감독의 변명이 오히려
영화가 현실이라고
더 강하게 웅변하고 있다

 

 
 ▲ 김기홍 부소장
평택비정규노동센터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내부자들’이 지난 12월 30일에 개봉한 감독판을 포함해 누적 관객 수 900만 명을 돌파했다. 작년에 먼저 개봉됐던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도 관람객 1300만 명을 넘어섰으니 가히 ‘을乙’들의 기세가 대단하다. 두 작품 모두 ‘슈퍼갑甲’과 ‘을乙’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닮았다.

언론사 논설위원 ‘이강희’(백윤식 배역), 연예기획사 대표이자 깡패이기도 한 ‘안상구’(이병헌 배역), 정치 검사 ‘우장훈’(조승우 배역)을 열연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한몫했지만 가히 이들 영화의 성공 요인은 ‘갑’들의 횡포에 억눌려 온 ‘을’ 들의 통쾌한 복수에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점에서도 ‘베테랑’의 흥행 요소를 빼닮았다. 혹시 ‘내부자들’을 보았을 때 실망한 관객들이 있었다면, ‘감독판’으로 다시 보실 것을 추천한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감독판에서 분량이 늘어난 ‘이강희’를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이들 영화가 이렇게 성공한들, 통쾌한 복수에 우리가 열렬한 환호를 보낸들, 그건 어차피 영화관 안에서일 뿐이다. 그저 대리 만족에 자족할 뿐이다. 그러한 현실이 세 시간을 넘게 상영되는 스크린을 보면서 든 아픔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병헌의 연기에, 혹은 조승우의 매력에 빠져서 이 영화를 보았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백윤식이 연기해 낸 ‘조국일보’ 논설위원의 말과 행동이 오히려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불편했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뭘 하러 개·돼지들한테 신경을 쓰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이게 대중을 대하는 재벌·언론·정치권력의 솔직한 속내라고 하면 과할까?

김광규 시인은 ‘묘비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한 줄의 시는커녕/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많은 돈을 벌었고/높은 자리에 올라/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이 묘비는 살아남아/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교수·언론인 등 수많은 지식인들이 위 시의 ‘문인’처럼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해 왔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의 등장 때도 그랬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 때도 마찬가지였으며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독재정권 이후 등장한 정권은 오히려 재벌의 이익을 지키는 데 철저하다. ‘큰 기업 사장님들’의 ‘기업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자’는 거리 선전전에 굳이 대통령이 나서서 서명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법을 만들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확대하는 법을 만들라고 국회에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재벌 회장님들은 큰 죄를 저질러도 응급실에 몇 번 갔다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은 ‘국가경제’ 운운해주고 이에 화답하듯이 ‘판사님’들은 회장님들을 쉽게 감형해 준다. 이렇게 언론·정치권력·재벌의 카르텔은 빈틈없이 공고하다. 영화가 현실이고 현실이 영화다. 현실과 영화 사이에 빈틈이 없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안상구’에게 응징을 당해 오른손을 절단 당한 ‘이강희’의 다음의 대사는 이렇다. “오른손이요? 까짓것 왼손으로 쓰면 되죠. 하하하하 하하하”

우리 모두를 향한 조롱이자 비웃음이다. 언론과 정치권력·재벌의 유착관계를 다룬 이 영화가 현실과 너무나 닮아서 ‘영화 속 내용은 허구이며 비슷한 내용은 우연의 일치’라는 감독의 변명이 오히려 영화가 현실이라고 더 강하게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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