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들의 잘못된 선택이나
정책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기득권층이 아니라
언제나 이 땅의 민초들이었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 김기홍 부소장/평택비정규노동센터

개봉일에 맞춰 영화 ‘귀향’을 보고 왔다. 눈물과 콧물은 물론 가슴까지 타고 흐르는 슬픔과 분노를 억제하기가 힘든 영화였다. 손수건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자책해야할 정도였다.

이 영화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진정 어떻게 하면 정신대 할머니들께서 평화로웠던 그때로 ‘귀향’하실 수 있게 할 것인지를 되묻고 되묻는다. 물론 ‘귀향’은 한자어로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歸鄕’이 아니라 귀신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의 ‘鬼鄕’이다. 한을 품고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했다. 적절한 제목이다.

입소문을 타서인지 개봉 첫날임에도 관람객들이 꽤 많았다. 개봉관 스크린 확보를 못해 전전긍긍했었다고 하는데 이 정도 관심이면 분명 연장 상영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조심스레 해 보았는데 벌써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아름다웠던 고향 마을과 어여쁜 소녀들 그리고 아비규환의 전쟁터와 인간의 폭력성이라는 극명한 대비, 일본군 배역을 맡아 연기한 무명 배우들의 사실적 연기, 무녀를 통한 혼령과의 접신과 씻김굿 그리고 이를 매개로 과거의 영혼들과 현재 우리들 간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한 감독의 연출력 등이 합쳐져 이 영화는 단지 소재뿐 아니라 구성 면에서도 뛰어나다.

늘 국가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왔으나 위정자들의 잘못된 선택이나 정책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기득권층이 아니라 언제나 이 땅의 민초들이었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말 한·일 양국은 외교장관회의에서 위안부 문제를 마무리 짓기로 합의했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박제로 만들려 한 셈이다. 정작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도 받지 못하였고 정당한 배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정부가 당사자들과는 상의도 없이 이제 위안부 문제는 공식적으로 종식되었으며 한일 양국이 10억 엔으로 할머니들을 위로한다고 발표를 할 수 있을까?

분명 헌법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문화된 조항이기만 하다.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는 여기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드’ ‘백남기’ ‘탄저균’ ‘노동 개악’ 등 곳곳에서 나타난다. 국민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몰아 부친다. 더 나아가 핵무장까지 서슴없이 주장하는 정치인마저 있는 실정이다.

영화 ‘귀향’에서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이 학살당하는 장면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만 피해자가 아니다. 조상들이 억지로 끌려가 능욕 당했는데도 제대로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배상도 받지 못해 아파하는 우리 후손들 역시 피해자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사가 아니다. 아베 신조 정권이 강제동원을 부정한다는 사실조차 현재진행형인 위안부 역사의 한 자락이다. 정부에서 위안부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할지는 모르나 일본 정치인의 망언은 이어진다. 일본 정부의 지원금 10억 엔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제작비가 없어 영화 개봉을 위해 무려 14년이나 걸린 일, 영화가 개봉될 줄은 상상을 못 했다는 손숙 씨의 이야기, 출연료를 받지 않고 참여한 배우들, 재일동포 출연자들, 무려 7만 5270명에 이르는 후원자들이 모두 이번 영화의 주인공들이었다. 제작비를 모금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하면서 조정래 감독이 남긴 다음의 말은 현재 진행형이다. “타향에서 돌아가신 소녀들의 영령을 고향으로 모셔오기를, 영화가 한번 상영될 때마다 한명의 영혼이 집으로 돌아가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진정 소녀들의 영혼이 돌아오기 위해 우리들이 할 일은 무엇일까. 분명 영화가 성공한다고 해서 멈출 일은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