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8월 1일

 

평택정차장 앞에 출장소 개설 영업 개시
상품 보관·금융·환전 등 창고업 업무취급


 

 

 

“本月 一日 爲始하야 平澤停車場 前에 本會社 出張所 開設고 左開 一般 倉庫業을 營行오니 多少 不拘고 去來하심을 仰要. 一, 一般商品의 保管. 一, 保管物品에 對 金融. 一, 換錢. 隆煕 元年 八月 七日. 京城 南大門外 漢城共同倉庫株式會社. 電話 五四四番. 仁川 각國 居留地 五号 同出張所. 忠淸南道 江景浦 同出張所. 平澤 停車場前 同出張所” (대한매일신문, 1907년 8월 23일자)

‘평택’이라는 지명은 언제부터 불렸을까. 고려사에 의하면 “평택현平澤縣은 옛 하팔현河八縣이다. 고려高麗에 와서 지금의 이름으로 불렸다”라고 돼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평택’이 오늘날과 같이 널리 알려진 것은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부터였다.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평택역’이 들어섰고 평택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마을 즉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평택역은 열차가 서고, 승객이 타고 내리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평택지역의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교통 등의 중심지로 부각됐다. 그래서 각종 관공서와 회사·사회단체들도 평택역 부근으로 모여들었다. 1907년 8월 1일 평택역 앞에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 출장소가 개설됐다.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는 현대적 창고 업무를 시작한 첫 회사다. 1905년 9월 6일 ‘공동창고조례’가 발표되자 11월 28일 자본금 15만원으로 남대문 근처에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가 창립됐다.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의 업무는 일반 상품의 보관, 보관물품에 대한 금융, 환전이었는데 주로 상인에게서 상품을 기탁 받고 보관하는 증서를 발행했으며 상품을 담보로 대출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06년 들어 사세가 확장되면서 인천과 강경 등지에 각각 출장소를 설치해 창고 업무를 확대했는데 평택은 1907년 8월 1일 출장소를 개설하고 첫 업무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공동창고조례’에 따른 창고 업무는 어디까지나 일제의 경제적 침략의 과도기적인 기관으로 설치돼 이용됐다.

1912년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 평택출장소는 대한천일은행(1899년 설립)의 후신인 조선상업은행에 합병됨에 따라 조선상업은행 평택출장소가 됐다. 해방 후 조선상업은행은 한국상업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1999년 1월 한일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으로 새롭게 출발했다가 2002년 5월 우리은행으로 다시 상호가 변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07년 8월 1일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 평택출장소가 개설됨으로서 평택에서 처음으로 금융업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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