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6월 18일

 

청북면 율북리, 양재근 설립하고 직접 가르쳐
1924년 4월에는 고등과 설치해 중등교육까지


 

 



 

 

“振威郡 靑北面 栗北里 有志 梁在根氏는 今年 二月 同里에 日新講習所를 設立하고 入學難으로 彷徨하는 兒童을 募集하여 普通學科를 敎授하던 바, 學生의 增加에 伴하여 校舍의 不足을 告함에 氏는 七百餘圓을 自擔하고 過般來校舍를 新築中이더니 今般 洛城되어 去 六月 十八日에 落成式을 擧行하였더라”(동아일보, 1923년 7월 7일자)

1920년대는 비록 일제강점기이지만 전국적으로 교육열이 크게 확장됐다. 여기저기서 배움에 굶주린 학동學童들을 위해 정규교육기관인 학교뿐만 아니라 비정규교육기관으로 강습소가 설립됐다. 평택에서도 강습소가 각 지역에 설립됐는데 1923년 2월 청북면 율북리 유지 양재근의 노력으로 일신강습소日新講習所가 설립됐다. 양재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지역 유지로서 적지 않은 선행을 한 바 있다.
1923년 2월에 설립된 일신강습소는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늘어남에 따라 설립자이며 교사인 양재근은 자비 700여 원을 들여 교사校舍를 신축하기로 했다. 마침내 6월 18일 신축 교사를 마련하고 낙성식을 가졌다. 1923년 9월 7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설립 5개월 만에 70여 명의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으며 소장은 양재근, 소감은 안영균安寧均, 회계는 박필보朴弼輔, 그리고 교사에는 이은령李殷寧, 장규원張奎元, 지수행신志水幸信 등 3명이 있었다. 교사 중 지수행신은 일본어를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영균은 1923년 3월 21일 청북면 학교평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바 있으며 1922년부터 25년까지 청북면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일신강습소는 설립 초기에는 오늘날 초등학교 과정을 가르쳤지만 1924년 4월부터는 중등교육 과정까지 가르쳤다. 당시 <동아일보>에는 ‘고등과’라고 했지만 중등교육으로 오늘날 중·고등학교 과정이다. 고등과의 중등교육은 교육경험이 풍부한 우진형禹鎭亨을 초빙해 개설했다. 1924년 6월경 일신강습소의 학생은 1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확장됐다. 이처럼 학생들이 많아지고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자 학부형들은 정규교육기관인 보통학교로 인가를 받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이후 일신강습소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규학교로 전환됐는지는 확인할 바가 없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