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9월 11일

 

관북지역 수해 피해에 의연금 모금
진위청년회와 동아일보 평택지국서


 

 



 

“關北地方 大水害에 對하여 振威靑年會와 本社 平澤支局에서는 救濟方針을 討議한 結果 關北水害同胞救濟會를 組織하고 義捐金 募集에 着手 中이라 하며, 收金되는대로 곧 傳達할 터이라더라”(동아일보, 1928년 9월 11일자)

자연재해는 ‘천재지변’이라고 한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을 경우 이와 같은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오늘날에도 천재지변이라고 하는 자연재해가 발생한다. 자연재해는 미리 예방을 하면 최소한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자연재해를 근본적으로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늘 우리 사회는 ‘의연금 모금’이라는 구제활동을 전개한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우리의 일상사의 하나가 됐다.
1920년대 전국적으로 자연재해가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장마로 인한 자연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 1923년에는 관서지역에서, 1928년에는 관북지역에서 대규모의 수해로 인해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특히 1928년 관북지역의 수해는 함경도의 신흥·풍산·홍원에서만 익사로 판명된 것만 400여 명에 달했으며 피해액은 1000만 원에 이르렀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 피해정도가 근래 조선에 있는 수해 중의 가장 혹심한 것의 하나’라고 할 정도로 그 피해가 컸다. 이에 언론사에서는 ‘관북수해 이재동포 구제금 모집’이라는 광고를 통해 의연금을 모금했다. 언론사에서 시작된 의연금 모금운동은 각지의 청년단체를 비롯해 각종 단체·기관에서 모금활동을 전개했다. 평택에서도 의연금 모금운동에 동참했다.
진위청년회과 동아일보 평택지국에서는 관북지역에서 수해를 입은 이재민을 구제하기 위해 합동회의를 개최하고 구제방침을 정했다. 이 모임에서 ‘관북수해동포구제회’를 조직하고 의연금을 모집하기로 했다. 당시 관북수해가 발생하자 가장 먼저 동아일보사에서 의연금 모금을 시작했는데 동아일보 평택지국은 진위청년회와 함께 의연금을 모집하기로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모금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수금하는 대로 이재민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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