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4월 15일

 

1912년 성환금융조합 지원, 평택금융조합 창립
1923년 조합장 윤종민, 총 자산 3억 7000만원


 

 

“平澤은 相當한 金融機關이 無하여 遺憾으로 生覺함은 一般이 共知하는 바라. 故로 三十萬名의 同族은 누구나 다 金錢融通上 困難을 받지 않은 사람이 無하였도다. 그럼으로 다행이 金俊植氏 活動으로 大正 一年度에 成歡金融組合의 支力으로 平澤金融組合이라 함을 創立하였다가 大正 三年度에 獨立의 力을 發揮하여 비로소 尹鍾敏氏와 上野進一郞氏의 盡力으로 우리 振威 同族으로 하여금 完全한 金庫가 되었도다. 그럼으로 設立된 지 어언 九個星霜을 지난 今日이라. 一般組合員은 滿面喜色으로 去十五日 午前十一時로부터 平澤公立普通學校에 開催되는 第九回 定期總會場에 (이하 하략)”(조선일보, 1923년 4월 19일자)

금융조합의 사전적 의미는 “일제강점기 농민들에게 돈을 융통해 주던 조합, 주로 농민 착취를 일삼았으며 뒤에 농업협동조합으로 고쳤다”라고 돼 있다. 금융조합은 오늘날 농협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평택에서 금융조합이 설립돼 어려운 농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농민들을 수탈하거나 착취하기도 했다.

평택금융조합의 초기 역사는 어떠했을까? 평택금융조합은 1912년에 설립됐다. 지난번 96회에 연재한 ‘평택금융조합 근황’에서는 1914년 11월 15일에 설립했다(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근현대회사조합자료>에 의하면 1914년 11월 25일에 설립됐다)고 한 바 있는데 <조선일보> 1923년 4월 19일자에 의하면 ‘대정 1년도’ 설립됐다고 했다. 대정 1년은 1912년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평택금융조합은 1912년 김준식金俊植이 중심이 되고 성환금융조합의 지원으로 설립됐다. 이후 1914년에 이르러 일본인 우에노上野進一郞와 윤종민尹鍾敏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성환금융조합에서 독립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평택금융조합이 1914년에 설립됐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평택금융조합이 1912년에 ‘창립’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택금융조합은 1923년 4월 15일 오전 11시 평택공립보통학교에서 제9회 정기총회를 개최한 바 있는데, 결산안에 의하면 총 자산은 3억 6969만 4435원이었다. 그리고 이날 금융조합 역원도 개선했는데 다음과 같다.

조합장 윤종민, 이사 우에노, 감사 장윤식張允植·방필재方弼載·이두종李斗鍾, 평의원 원제학元濟學·최상순崔相淳·주주헌朱柱憲·이익종李翼鍾·유창근柳昌根·박세보朴世輔·최진崔鎭·민인호閔麟鎬·주시탁朱時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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