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잃은 어미를
불쌍히 여기고
불안전한 사회구조를 만들어
아이들을 희생시킨 데
무한책임을 느껴
부끄러이 여기고 …

 

 
▲ 심우근 교사/비전고등학교

또 봄이다. 바알갛게 맺는 꽃봉오리들, 어느새 활짝 피어 웃는 꽃잎들. “꽃 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이 마음은 푸른 산 저 너머~” 고교 1학년 음악시간, 피아노 반주에 변성기 갓 지난 남학생들만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부르던 가락이 40여년을 되돌아 귓가를 맴돈다. 그러다 차마 화사한 봄 감상에 마냥 젖어들지 못하고 진저리를 친다. 슬픈 사월, 애통 절통의 사월, 분노의 사월. 잔인한 사월. 4·3과 4·19와 아! 4·16 세월호….

이태 전, 떠올리기도 쉽지 않은 그날, 검게 출렁이던 바다, 육해공을 향해 어지러이 카메라 들이대며 곧 구조해낼 듯 허풍떨던 방송사 기자들, 허둥지둥 중심도 갈피도 못 잡으면서 윗사람 수행과 의전만큼은 칼 같은 철저함으로 대응하던 겉만 번드르르한 관료들. 발 동동 손 부들 눈물범벅 가족들 절규. 허망은 아픔으로 아픔은 분노로 분노는 굳은 의지로 의지는 두발의 당찬 내딛음으로 오늘까지 이어왔다.

2년이나 지났건만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는 갈 길이 멀다. 정부 여당의 이런 저런 방해와 회피, 시간 끌기로 애먹고 있다. 세월호 침몰의 직접 원인이나 구조의 난맥상, 총괄 지휘부의 미비점 등을 시원스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감추려는 의도가 역력한 자가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공동 조사를 벌인다는 희극 같은 비극을 연출하고 있다.

“기다리라!” 하다가 왜 자신들만 쏙 빠져 나왔을까? 왜 해경은 선원만 구출하고 구조 헬리콥터나 미국 군함 등을 돌려보냈을까? 해경은 왜 해군 최정예 구조 요원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육군의 도움도 거절했을까? 배가 기울어 침몰해 가는 숨 막히는 상황인데 국정원에 먼저 보고한 까닭은? 세월호 노트북에서 국정원 지시사항이 발견됨은 왜일까? 직원 휴가비나 자판기, 화장실 휴지, 비누, 거울 교체까지 왜 국정원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가? 국가정보원과 세월호는 과연 어떤 관계일까? 조사 1순위인 선장은 해경간부 자택에서 자고, 선원들은 모텔에서 합숙한 까닭은? 지금까지 유병언 일가에게 구상권도 청구하지 못했고 그래서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는데 왜 유병언만 붙잡으면 다 해결될 듯 소란을 떨었을까? 다이빙벨 등 효율성 큰 장비를 구조 초기에 왜 마다했을까?

세월호 관련 의문점은 이밖에도 참 많다. 그러나 배 이름처럼 세월은 흐르고 조각난 진실들은 짝 잃은 퍼즐 조각되어 둥둥 떠다니다 사라지는 건 아닌지. 빨리빨리 병이 창궐한 한국 사회 구조에 세월호 침몰이 던진 질문은 아프고 날카로웠다. 안전, 위기관리 문제점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거라고들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정말 그런가? 2014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 안전 위기 대응 구조가 달라졌을까? 다시 이전과 같은 대충대충 관행과 느슨한 마음, 눈 앞 이익 위해 안전 규정 슬그머니 뭉개고 있지는 않나.

어떤 이는 말한다. 이제 그만할 때 아니냐고, 대놓고 지겹다고까지 한다. 성현 가르침으로 돌아가 보자. 학교 다닐 때 윤리 시간에 달달 외던 그 구절 맹자 공손추편 公孫丑篇 사단설 四端說이다. ‘무측은지심 비인야 無惻隱之心 非人也(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무수오지심 비인야 無羞惡之心 非人也(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무사양지심 비인야 無辭讓之心 非人也(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무시비지심 비인야 無是非之心 非人也(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한순간 자식 잃은 어미를 불쌍히 여기고, 불안전한 사회구조를 만들어 아이들을 희생시킨 데 무한책임을 느껴 부끄러이 여기고, 뒤틀린 사회 구조를 바로 잡고 사고책임을 가려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시비지심을 갖춤이 사람이라 하지 않나. 내 가족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지 말자. 유가족들의 슬픔과 진실 규명을 위한 외침에 동참은 못할망정 어깃장이나 놓는다든가 삿대질은 말자. 어둡고 차가운 바다 엎어진 배 안에 아직도 9명의 ‘사람’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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