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경험이 많아도
왜 그 사업을 하는지
외면한 채
자신의 입장에서만
사물을 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현장에 가볼 때 비로소
느끼곤 합니다

 

   
▲ 이수연 전 부이사장/한국사진작가협회

K兄. 저는 지금 나오시마의 미야노우라항 선착장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부두 풍경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쿠사마 야요이의 거대한 빨간 호박 아래에서 말입니다. 원색의 요철 몸체에 검정색 둥근 점박이 호박조각을 어디선가 한 번 쯤 본적이 있지요? 항구의 한쪽 공터에서 실물을 대하니 새삼 예쁘기도 하고, 참 별납니다. 이런 조형물 하나가 관광객을 끌어들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탄도 절로 나고요.

일본의 네 번째 큰 섬인 시코쿠四國의 북쪽 타카마쓰 우노항에서 한 시간 남짓 배를 타야 하는 나오시마에는 이미 엄청난 관광객들이 인근 항구에서도 밀려오고 있습니다. 4월초, 만개한 벚꽃과 3년마다 여는 ‘세토우치국제트리엔날레예술축제’가 어우러졌기 때문이지요. 3년 전에도 이 축제 기간 중에 전 세계에서 107만 명이 다녀갔다는데 올해는 그를 훌쩍 뛰어 넘을 것이라니 상상이 되십니까? 이런 예술섬을 만든 이는 한 출판업자입니다.

선친의 유지로 회사 본부가 있던 근처의 나오시마에 청소년 캠프장을 조성하고자 방문할 때마다 섬의 쇠락을 안타까워했다는군요. 섬의 주요산업이던 광물 제련업이 쇠퇴했다지만 국가 행정력 부재로 섬이 그토록 방치되는데 화가 치밀어 올라 정부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처럼 나선 것이랍니다. 다만 동원한 무기가 현대미술이었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지추地中미술관과 베네세 하우스, 미국 작가 제임스 터렐, 재일 한국작가 이우환 미술관 등이 들어선 까닭이기도 하고요. 그의 생각은 적중했습니다. 처음부터 일류작품을 모은 것도 ‘일류작품에는 일류 메시지가 있고,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기 때문’이라니 계산서 따지는 기업가가 아닌, 그의 높은 안목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땅속에 미술관을 짓는다는 발상이나 호박조각을 설치하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라고 해도 주민이 살고 있는 집을 미술품으로 만들자는 또 다른 작가들의 의견을 수용한 주민들이야 말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섬은 젊은 층이 몰려오면서 지역주민들, 특히 노인들의 표정이 생기를 띠는 등 놀라운 활력을 되찾았지요.

K형. 삼십여 년 전에 이런 일들을 전개했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뿐 이런 이야기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나오시마 만해도 인터넷을 심도 있게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굳이 현장까지 찾아 온 것은 장자莊子 외편外篇에 나오는 ‘윤편’의 수레바퀴와 같다고나 할까요. 그랬다지요? 바퀴의 축을 꽂는 굴대를 깎을 때 ‘손의 감각으로 체득해서 마음이 호응해야 제대로 깎을 수 있는 것이라, 비결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입으로는 말 할 수 없다’고 한 그것 말입니다. 건물의 독특함이나 작가의 유명함은 우리도 옮겨 올 수 있지만 그것들이 그 공간에서 어떻게 어우러지고 어떤 아우라Aura를 만들어 내는지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알파탄약고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박물관을 지어도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 평택박물관 용역을 맡은 소위 ‘학자’들의 발언은 차라리 언어폭력이었습니다. 지식과 경험이 많아도 왜 그 사업을 하는지 외면한 채 자신의 입장에서만 사물을 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현장에 가볼 때 비로소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나오시마에 오고자 한 것입니다.

K형. 그런데 말입니다. 이 편지는 사실 집에서 쓰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일 금요일이었습니다. 새벽 첫 버스를 타고 공항에 갔지만 현지 기상악화로 항공편이 취소되어 탑승구역에서 8시간을 기다리다가 돌아오고 말았던 거지요. 하늘이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체념 속에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그 좋은 델 혼자가지 말라는 계시 같기도 합니다. 다음에는 꼭 같이 가자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들은 많지만 함께 가서 느낄 현장의 감동을 위해 이만 총총悤悤. 안녕히 계십시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