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떠나보니 소중함 더 다가와”

400년 이어온 마을, 개발 소식에 상실감 커
일방적 개발계획 발표, 구체적 답변은 없어

 
“우리가 평택시민이긴 한건가요?” 공식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어수선한 ‘진위 제2산업단지 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성희 위원장의 첫 마디는 소외되고 고향을 등져야만 될 개발지역 주민들의 아픔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개발소식을 들은 자연 마을에서 자생적으로 모임이 생겨 주민의견을 모은 것이 시초였다고 볼수 있죠. 그것이 리 단위로 모이고 결국 개발지역 내 모든 단체들이 모여 조직된 것이 우리 대책위입니다”
김성희 위원장의 집안은 대대로 진위면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학창시절 새로운 삶을 찾아 서울로 유학길에 오른다. 낯선 곳에서 결혼도 하고 어느 정도 경제적 자립도 이뤘지만 그에게 있어서 고향은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마음의 안식처였다.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고향에 올 때마다 김 위원장은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말이 있다. “너희들이 삼시 세끼 먹는 밥은 할아버지가 저기 보이는 논에서 기른 것이야”
그러나 LG전자가 들어설 산업단지 개발계획이 알려지고 그 소식을 들은 아이들이 물어온 말을 떠올릴 때면 아직도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아빠는 그럼 고향이 없는 거야? 할아버지는 어디서 살아? 우리 쌀은 어떻게 되는 거야?”
400년을 이어온 자연마을에서 평생 농사만을 알며 살아오던 어르신들은 경제적으로 메울 수 없는 상실감에 논일에서도 손을 놓고 허탈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개발계획이 발표된 뒤 기간도 일방적으로 발표해놓고 아직까지 이곳 주민을 위해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언질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대책위 출범 전에도 몇 번인가 평택시와 사업시행자인 평택도시공사 관계자들을 만나봤지만 언제나 잘해주겠다는 통상적인 답변뿐이었죠”
주민들의 반대시위나 행동들이 단순히 보상을 많이 받기 위한 것으로 비춰질 때마다 가장 가슴이 아프다는 김 위원장은 “왜 하필 이곳이어야 합니까, 기업 유치를 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소수 마을주민의 고충에 대해 평택시는 과연 얼마나 진지한 고민을 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라며 격정에 복받친 듯 한동안 말문을 잇지 못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주민대책위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주민들은 전체 수용가구의 40%를 훌쩍 넘어 50%에 근접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각각 떨어져 있었을 때는 다소 이견이 있었지만 이젠 한 곳으로 집결돼 단합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도 대책위 출범 후 달라진 모습이다.
“위원장이라는 직책이 가진 부담감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습니다. 제가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요즘은 사업장은 거의 방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아직 젊은 나이여서 물불 모르고 뛰어든 자리지만 그저 능력이 닿는데 까지 최선을 다하는 방법 뿐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잘해도 누군가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 모인 자리, 작던 크던 한 조직을 대표하는 자리에 선 김성희 위원장은 “칭찬을 들으리라고는 애당초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욕을 덜 먹는지가 최대 고민”이라며 웃음 짓는다.
“고향을 떠나 있었을 땐 몰랐었는데 막상 고향을 잃게 되는 상황에 처하니 소중함이 절실하더군요. 잃는 상황에서 얻는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제게도 닥칠 줄은 몰랐습니다”
진위 제2산업단지 개발로 수용되는 지역의 주민 대부분은 고령의 노인들이다. 대책위원회에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당장의 보상 보다는 그 이후 삶에 관한 적절한 보완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보상을 많이 받으면 좋죠. 하지만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호도돼서는 곤란합니다. 개발문제로 평택시와 주민 사이에 마찰이 있는 것은 돈으로 상계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한 때문이 아닌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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