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원소’, 도시 속의 인간은 기계 속의 부품과 같아
30년쯤 흐른 후 평택의 모습 ‘제5원소’처럼은 안돼야

현대인이 꿈꾸는 가상 미래도시
실베스터 스텔론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저지 드레드’는 2139년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리에는 인간과 인간의 모습을 닮은 로봇이 뒤섞여 있고, 하늘에는 공중 부양이 가능한 자가용 비행기가 날아다닌다. 인간의 편리한 삶에 최적화된 도시는 바벨탑처럼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 인간이 로봇과 함께 뒤엉켜 싸우고, 인간이 로봇인지, 로봇이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모습이 화면 가득하다.
2004년에 제작된 ‘아이, 로봇’의 가상도시도 ‘저지 드레드’와 다르지 않다. 윌 스미스와 브리짓 모나헨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우리시대와 가까운 2035년 미국 시카고가 배경이다. 시간적으로는 앞의 영화와 100년의 차이가 있지만 이 도시도 온통 잿빛이다. 하늘을 찌를 듯 한 첨단 고층빌딩, 지하에 건설한 최첨단 고속도로, 시속 200km쯤으로 달리는 특이한 자동차, 최적화된 주차장,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거리, 지극히 편리한 주택과 사무실.
영화감독 뢱베송의 ‘제5원소’는 미래 가상도시의 결정판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도시는 거대한 기계와도 같다. 도시 속의 인간은 기계 속의 부품이다. 타워펠리스처럼 모든 공간은 편리함과 쾌적함을 극대화시켰지만 도시 어디에도 살 냄새, 흙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영화에 나타난 미래도시는 지나칠 만큼 쾌적하고 편리하지만 기계에 의한 인간소외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인간의 상상력과 감성은 사라지고 도시는 중앙컴퓨터라는 거대한 기계에 의해 독재되고 통제된다. 이러한 도시에서는 역사와 문학, 철학과 같은 학문은 필요 없어 보인다. 인간은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와 같은 실용적이지 못한 주제들은 결코 용납되지 못하다.

‘제5원소’같은 미래도시를 꿈꾸는가?
평택시에 박물관을 건립하자는 논의가 시작된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협소한 중앙도서관을 소사벌택지지구에 신축하겠다는 계획도 LH공사의 자금난 때문에 세금으로 지어야 할 판이다. 도시에, 시민들의 가슴 속에 삶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갖게 하고 문화와 예술의 옷을 입히려는 노력은 도시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안성천 변의 모래톱과 버드나무들, 곳곳에 펼쳐졌던 광활한 습지들도 미군기지 이전공사를 위한 모래채취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진위천 하류에서는 K-6 미군 기지까지 연결하는 철교공사가 진행 중이다. 안성천 하류 현덕면 삼계리 부근에는 K-6 미군 기지를 휘감아 돌아가는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대규모 다리공사를 하고 있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평택시는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에 칭칭 감겨 있는 애벌레와 같다. 많은 지도자들은 거미줄 같은 도로망과 항만, 철도를 이용하여 평택시의 부(富)를 극대화시키자고 주장한다. 산과 들과 마을을 밀어내어 공단을 건설하고, 최첨단 빌딩과 위락시설을 갖추기 위해 매일매일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 삼성전자가 들어오면 인구는 몇 명이 증가하고, 일자리는 몇 개가 창출되며, 소비시장이 얼마나 활성화될 것인가를 따지기만 바쁘다. 지금도 도두리벌과 금각들에는 미군기지 확장공사에 투입된 굴삭기의 굉음이 하늘을 찌른다. 진위면 가곡리와 야막리 일대에는 조만간 LG전자 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부동산경기 불황으로 조금 주춤한 상태지만 택지개발 예정지역, 재개발 예정지역으로 묶인 들판과 마을도 무수하다.
이렇게 30년쯤 흐른다면 평택시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아니 100년, 150년이 지나고 나면 어떻게 변해 있을까. 흡사 제5원소의 도시처럼 첨단빌딩이 즐비하고, 도시는 최적화되었으며, 경제적 부(富)가 넘쳐나고, 인간이 힘써 노동하지 않아도 로봇이 모든 일을 처리해주지만, 정작 인간은 소외되어 어느 방구석에 들어박혀 가슴을 쥐어뜯고 있지는 않을까? 물질적 풍요만큼이나 정신문화의 발전에 힘을 기울였던 선현(先賢)들의 노력에 우리의 현실을 반추(反芻)해 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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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규
한광중학교 교사
지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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