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얼굴의 반장, “인기는 짱이예요”

부용초 4년 사무엘, 다문화 학생 반장돼
의사가 꿈, 앙골라보다 한국이 더 좋아해

 
“미역국이 제일 좋아요. 왜냐면요 맛있으니까요” 이미 한국의 맛을 알아버린 풍기사무엘, 그는 유난히 큰 눈망울에 미소가 정겨운 앙골라출신 12세 소년이다.
그가 한국에 온 것은 5년 전, 조국의 내전을 피해 1년 먼저 한국에 온 아버지가 난민자격을 취득한 후 일자리를 얻어 사무엘을 불러들인 것.
“한국에 와서 유치원에 들어갔는데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어린 나이에 타국에 온 사무엘은 잠시 혼란과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이 왕성한 호기심과 적응력을 보이며 한국에 대해 알아갔다.
“여느 아이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피부색이 달라서 처음엔 걱정도 했지만 그저 조금 특별한 친구라는 정도였지요. 아이들 세계에서는 어른들이 걱정하는 그런 차별이나 편 가름이 없더군요. 금방 또래들의 세계에 녹아들었고 자연스럽게 동화되었습니다”
사무엘이 다니고 있는 부용초등학교 김명령 교장은 사무엘 이야기를 하면서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처음 우려와는 달리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가고 있는 제자의 모습이 대견하기 때문이다.

이젠 어엿한 반장, “내 꿈은 의사”
지난 3월 초, 4학년에 진급한 사무엘은 반장선거에 도전해 29명의 반 학생 중 15명의 지지를 얻어 세 명의 다른 후보를 물리치고 반장에 선출됐다.
“처음에는 친구가 나가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나중엔 저 스스로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선거에 나가기로 결심했는데 반장을 해보니까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아서 힘든 것도 많지만 반 대표로 나서는 것은 참 좋아요”
욕심이 많은 반면 리더십도 강해 반장이 된 이후에 친구들 사이에서 “짱”이라고 불린다는 사무엘은 다음에도 꼭 반장을 하고 싶다며 열의를 불태우기도 했다.
“처음 초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언어 탓인지 성적도 꼴지를 맴돌았고 친구도 없었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차차 적응해 나가더니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에 임하더군요. 3학년 때는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도 앞장서서 척척 해내곤 했지요. 리더십 못지않게 유머감각도 풍부한 편입니다. 이런 모습들이 급우들이 사무엘을 반장으로 뽑아준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급 담임을 맡은 이은하 선생은 그런 제자를 보며 교직에 몸담은 보람을 느끼곤 한다. 모든 운동에 만능인 사무엘은 특히 축구를 좋아해 박지성 선수를 닮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맘속 깊은 곳에 그가 이루고자 하는 꿈은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이다.
“나중에 커서 의사가 되고 싶어요. 그러면 부모님이 아플 때 치료해드릴 수 있잖아요”

“한국에 오래 남아있었으면”
사무엘의 아버지는 아들이 한국생활에 잘 적응해가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언젠가 돌아가야 할 조국이 있는 사무엘이 앙골라를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냥 편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항상 명랑하고 유쾌하게 보이지만 영국에 살고 있는 어머니 생각이 떠오를 때면 맘 한구석이 텅 빈 것 같다. 다행히 1년 전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누나 플로라(16)가 한국에 입국해 가족을 이룬 것이 큰 위안거리다.
“집에 가면 거의 앙골라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아요. 전 한국 음식이 좋은데…, 누나는 아직 한국말을 잘 못해서 불어로 이야기를 해야만 해요. 그래도 누나가 있어 다행이죠. 아빠는 언젠가는 돌아갈 거라고 말하지만 난 한국에 있고 싶어요. 앙골라에 대한 기억보다 한국에 관한 기억이 많고 무엇보다 한국이 좋으니까요”
누나 플로라는 현재 평택대학교 다문화지원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디딤돌 스쿨’에 다니며 뮤지션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본지 제25호, 2012년 6월 7일자 보도)

다문화 “우리 모두의 노력 필요”
“한 학생을 올바로 키우기 위해선 지역사회 전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문화 가족 문제는 어느 특정 가정의 힘만으로 해결되기 어렵죠. 그들도 한국인이고 나아가서는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외교관 역할을 하는 한국 문화 전도사이기 때문에 더욱 보살핌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부용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인 이훈희 씨는 교육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어른들의 책임임을 강조하며 말을 이어갔다. “특히 어린 시절에 한국에 들어온 학생들은 아직 정체성 확립이 안된 상태기 때문에 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가 어떻게 새겨지느냐가 정말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부용초등학교는 다문화관련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학교죠”
현재 부용초등학교에는 필리핀, 미국, 북한, 러시아, 앙골라 등에서 온 다문화 학생 15명이 재학중이며 대부분 결혼 이민을 온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경우로 사무엘과 같은 중도입국 자녀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부용초등학교는 다문화 교육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통합교육 연구학교를 운영해 학생들에게 배려와 나눔의 자세를 가르쳐 다문화 학생에 대한 인식 제고 문제를 먼저 해결했다. 그 후 다문화 가정을 방문해 청소활동, 김장하기 등 학부모와 연계한 다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짝꿍과 함께하는 체험활동, 디딤돌 공부방 학습지도, 방과 후 특기적성 지원 등 학교다문화 프로그램을 상시로 운영하며 앞서가는 다문화교육 학교로 발돋움하고 있다.
김명령 교장은 “다문화교육 관련 연구학교 또는 다문화학급 증설을 통해 다문화학생 인식개선 및 더불어 살아가는 학교생활문화 만들기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다양한 다문화관련 프로그램적용으로 최소한의 기본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현재 경기도에서는 5개 학교에서 다문화 교실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주한 미군 이전을 앞두고 국제화 도시를 지향하는 평택시에는 단 한 개의 다문화교실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는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보다 많은 사무엘이 나오기 위해선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문화가족이란?
우리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 북한이탈주민(새터민), 외국인거주자 및 그들의 자녀들을 비차별적으로 부르는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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