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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학특별기획 - 평택사람들의 길 <5. 도시의 골목길, 추억과 그리움>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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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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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평택동으로 옮기려고 계획했던 것은
새시장 일대가 대부분 논과 밭이었고
철도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새시장 조성은 평택읍에서 주도했다.
평택읍사무소는 논밭을 메워
7평, 10평짜리 상가건물을 짓고는
일반에게 분양했다.
분양가는 7평짜리 상가건물의 경우
평당 10만원이었고
지가地價는 별도였다.
당시 새시장 상가는
인기리에 분양됐다.
시장이 옮겨오면 부동산 가치가
엄청나게 뛸 것이라는 소문에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사무원들이나
공무원, 지역 자산가들이
너도 나도 분양에 뛰어들었다.



 

   
▲ 평택동 새시장 전경/드론 박성복 사장
   
▲ 새시장 조성 초기에 분양받은 황○○(59세) 씨 가옥




10 - 젊은이의 거리로 변모한 새시장골목

이촌향도하였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였으며,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터였던 골목길. 누구에게는 문학이었고 누구에게는 음악이었으며 누구에게는 삶의 전부했던 그 길을 따라 함께 기억여행을 떠난다. <평택시사신문>은 앞으로 10회에 걸쳐 평택지역의 길 ‘도시의 골목길’을 연재한다. 도시의 골목길을 통해 평택사람들의 삶을 따라가 보자. - 편집자 주 -




 

   
▲ 평택동 신 중심지로 부상한 평택동1번지 사거리
   
▲ 군계폐계닭과 쌍용폐계닭

 

■ 시장市場이 아닌 ‘새시장’
초임교사 시절 성동초등학교 건너편에 단골술집이 있었다. 우애가 남달랐던 동료교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삐걱거리던 술집 문을 두드렸다. 술상 앞에 앉아 인생과 문학, 역사와 음악을 이야기하며 짧은 여름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그 술집은 이름이 없었다. 우리가 편의상 붙여준 ‘번지 없는 주막’, 선배교사들이 붙여준 ‘성동주점’을 상호처럼 불렀다. 옛날 서울 피맛골 술집들처럼 곁방을 헐어 만든 좁은 공간에는 술상이 두 개 뿐이었다. 단골손님도 거의 없었지만 어쩌다 손님이 들어 테이블 두 개가 꽉 차 버리면 주인할머니는 우리에게 ‘마당에서 마실 텨’라고 묻곤 했다. 곁방 문을 열면 안채로 연결된 두어 평짜리 작은 마당이 있었다. ㅁ자 집의 작은 마당에서는 하늘도 네모지게 보였다. 우리는 그곳에 앉은뱅이 술상을 놓고 앉아 낭만浪漫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셨다. 술집 주인은 천하의 욕쟁이였다. 한 때 ‘욕쟁이할머니’가 트렌드였던 시절에는 가짜 욕쟁이가 속출했지만 이 분은 순수 전라도 욕쟁이(?)였다. 술상을 준비하면서도 ‘어이 씨벌’을 입에 달고 살았고, 누가 술 먹고 행패라도 부리면 ‘씨벌눔들이 으디서 행패여’라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납작한 슬레이트 지붕에 허름한 주택들이 즐비했던 그곳을 평택사람들은 ‘새시장’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시장市場’이라고 해서 장터가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년 동안 눈 씻고 둘러봐도 시장은 없었다. 그곳이 1963년 통복시장을 옮기려다 중단된 곳이라는 이야기는 10여 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시장을 평택동으로 옮기려고 계획했던 것은 새시장 일대가 대부분 논과 밭이었고 철도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평택시외버스터미널은 1973년 1월 15일 현 위치로 이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박애병원과 삼성빌딩 사이에 있었고, 그 이전에는 평택역 건너편에 있었다. 통복시장에는 없는 교통의 편리성은 주변 상권의 중심이 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다. 시장 조성은 평택읍사무소에서 주도했다. 평택읍은 논밭을 메워 7평, 10평짜리 상가건물을 짓고는 일반에게 분양했다. 분양가는 7평짜리 상가건물의 경우 평당 10만원이었고 지가地價는 별도였다. 당시 새시장 상가는 인기리에 분양됐다. 시장이 옮겨오면 부동산 가치가 엄청나게 뛸 것이라는 소문에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사무원들이나 공무원, 지역 자산가들이 너도 나도 분양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시장이전이 무산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을을 떠났다. 필자가 평택과 인연을 맺은 1980년대 후반 새시장 골목길이 한산하고 음산했던 것은 그런 이유였다.

 

   
▲ 폐계닭골목으로도 불리는 새시장골목의 저녁



■ ‘전매서골목’ 또는 ‘폐계닭골목’으로도 불려
한산했던 새시장골목이 활기를 띄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다. 명동골목이 쇠락하면서 상인들은 옛 평택극장과 JC공원을 넘어 옛 남서울병원과 박애병원 주변으로 이동했다. 사실 1990년대만 해도 남서울병원과 박애병원 주변은 몇몇 맛집과 대형건물, 막걸리와 소주 냄새에 찌든 거리였다. 거리의 상징이랄 수 있는 박애병원과 남서울병원도 1980년대 초반에서야 개원했다. 변화의 조짐은 1980년대부터 나타났다. 평택1번지 주변의 목공소나 국민은행 주변의 쓰레기장이 매립돼 상가로 변한 것도 이 즈음이다. 평택지역 대중문화를 선도한 코리아시티 나이트클럽, 호텔 강원가든, 남서울병원 뒤편의 전주비빔밥집, 1990년대 초 1000원짜리 해장국으로 유명했던 남서울병원 건너편의 실비집, 박애병원 뒤편의 대창통닭, 평택경찰서 건너편의 충남칼국수, 평택역 앞 옛 터미널 주변에서 시작했다는 파주옥, 김준경 교수가 시작한 레스토랑 ‘섬’, 평택경찰서 앞쪽에 몰려 있었던 체육사들이 문을 연 것도 이 때 쯤이다.
남서울병원과 박애병원 앞 밀레니엄길이 번화하고 있던 시기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었던 새시장골목에는 폐계닭골목이 형성됐다. 평택에서 폐계닭 요리를 처음 시작한 것은 지금도 평택전매서(현. KT&G) 골목 입구에서 영업을 하는 ‘군계폐계닭’ 김영희(73세) 씨다. 군계폐계닭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평택군과 안성군의 ‘군계郡界’였던 비전동 문화아파트 앞에서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동일공고 뒤편 전라도촌 일대의 양계장과 공도 일대에서 폐계닭을 받아다 닭볶음탕을 해서 술안주로 팔다가 1990년 새시장골목으로 이전하면서부터 유명세를 탔다. 몇 년 뒤에는 군계폐계닭 근처에 쌍용폐계닭이 개업을 했고, 18년 전에는 쌍용폐계닭의 동생이 남서울병원 건너편 일명 P맛골 입구에 ‘평택폐계닭’을 개업했다. 근래에는 김영희(73세) 씨의 딸 김현애 씨도 어머니와 동일한 상호로 맞은편에 군계폐계닭 분점을 냈고, 그밖에도 여러 개의 닭갈비집과 ‘계수작’이라는 독특한 상호의 닭요리 전문점까지 들어서면서 새시장골목은 ‘새시장’, ‘전매서’와 같은 지명을 제치고 ‘폐계닭 골목’으로 변신했다.
 
 

   
▲ 옛 명동골목 경보극장 앞에서 전매서 골목으로 이전한 배불뚝집
   
▲ P맛골 입구의 평택폐계닭



■ 새시장골목은 그리움으로 남을 것인가?
황○○(59세) 씨는 새시장골목에서는 드문 토박이다. 본래 그의 집은 평택경찰서 뒤쪽에 있었다. 아버지는 경찰서 뒤쪽에 살면서 새시장골목에 있었던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지었다. 1960년대 중반 논밭이었던 곳에 새시장이 조성되면서 아버지는 상가건물 몇 채를 구입했다. 그의 기억으로 상가는 방 한 칸 부엌 한 칸 구조에 150만 원쯤 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상가를 구입했지만 시장 이전은 좌절됐고 나중에 장성한 그의 집이 됐다.
새시장기름집의 김상욱(74세) 씨는 새시장골목의 성공한 사업가다. 그의 고향은 전라도 곡성. 20살 젊은 나이에 빈손으로 올라와 안 해본 일이 없다. 군대에서 전역한 뒤 어렵게 일한 돈으로 새시장골목에 국수집을 열었다. 그럭저럭 운영되던 국수집이 몇 년 뒤에는 방앗간으로 바뀌었고, 방앗간을 해서 번 돈으로 7평, 10평짜리 주변 상가 몇 채를 매입해 빌딩을 지었다. 김상욱 씨는 1974년 전후 시장이전이 추진됐던 것으로 기억했다. 초기 주민들은 모두가 대박을 노리고 입주했지만 시장이전이 좌절되면서 큰 실망만 안고 골목을 떠났다. 김 씨는 새시장골목이 크게 번영하기 시작한 것을 15년 전쯤으로 기억했다. 그것은 필자의 기억과도 일치했다. 또 극장과 술집, 식당이 밀집돼 크게 번영했던 명동골목의 쇠퇴와도 비슷했고, 평택시의 인구증가가 두드러졌던 시기와도 일치하다. 새시장은 평택역이나 시외버스터미널과 가까운 반면 상대적으로 명동골목 일대보다 점포세가 쌌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가게가 많아지게 된 배경이다.
기름집 건너편에서 ‘새시장방앗간’을 운영하는 이○○(62세) 사장과 주민 안○○(65세) 씨는 각각 12년 전과 30년쯤 전에 새시장골목으로 들어왔다. 인천이 고향인 안 씨는 30여 년 전 직장 때문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새시장 일대는 납작한 슬레이트지붕의 상가들이었고 도로는 비포장이어서 비가 내리면 질퍽댔다. 마을 주변도 논밭과 쓰레기장뿐이었다. 안 씨는 새시장골목의 변화를 격세지감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가 빨랐다. 이 사장님은 12년 전 새시장골목에 들어온 신출(?)이다. 그의 방앗간은 전 주인이 20년을 운영하다 그에게 물려줬다. 이제는 번화한 골목의 낮선 가게가 되었지만 12년 전까지만 해도 새시장 방앗간은 골목 안에서 잘 운영되던 대표상점이었다.
새시장골목의 변화는 평택시가지 변화의 2단계에 속한다. 용이동에서 고덕국제신도시로 이어지는 새도시 벨트가 완성되면 평택시가지는 국도 1호선을 중심으로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양분될 것이다. 그 시기가 오면 새시장골목은 어떻게 될까. 우리 기억 속의 모습은 그리움으로 남을까? <계속>




 

   
▲ 새시장방앗간의 풍경

 

글·사진/김해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
다큐사진/박성복 평택시사신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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